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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하며 뺨을 맞대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Hello.

by 방구석도인

원어민과의 영어 수업 시간에 Greeting에 대한 내용이 교재에 나왔다. 악수하는 모습, 허리를 숙이는 모습, 뺨을 맞대는 키싱, 포옹, 이렇게 네 가지 인사법이 사진으로 실려 있었다. 영미권에서는 친밀한 관계의 남녀가 만나거나 헤어질 때, 뺨을 맞대는 키싱을 하는 것이 매너라고 알려줬다. 키싱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매너 없는 행동이라고 한다. 키싱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봤던 장면이라 낯설지 않았는데 친밀한 관계에서만 하는 인사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이성끼리만 하는 인사법이라는 사실도. 성별이나 친소 유무에 상관없이 하는 인사인 줄로만 알았다. 남자끼리는 키싱 인사를 하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J는 깜짝 놀라며 게이나 그렇게 한다고 했다. 외출하거나 돌아올 때 엄마와 누나가 항상 J에게 키싱을 해주었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 처갓집에 처음 인사 드리러 갔을 때, 처제에게 키싱을 했더니 처제가 깜짝 놀라더라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아내에게, 이 나라는 키스도 안 하고 뭐냐고 항의했더란다.


영미권 드라마나 영화에서 아빠와 딸이 포옹하고 뺨을 맞대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어릴 적 아빠와 떨어져 자란 나는 아빠와 서먹하게 지내는 사이기에 스스럼없이 포옹하며 뺨 맞대는 부녀의 모습이 부럽다. 아빠와 딸이, 엄마와 아들이, 남동생과 누나가, 오빠와 여동생이 서로 안고 뺨을 맞대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얼마나 정겹고 따사로운 세상일까 문득 생각해 본다. 요즘은 또 다르겠지만, 내가 나고 자란 80년대와 90년대는 지극히 보수적이었다. 아빠와 딸이 다정하게 손잡고 팔짱 끼는 것조차 흔한 일이 아니었고,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무뚝뚝했다. 그저 문화의 차이일 뿐, 우열을 가릴 수는 없겠지만 나는 허깅과 키싱이 만연한 나라가 부러워진다. 친밀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가슴을 맞대고 뺨을 맞대면 얼마나 따스할까.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허깅과 키싱을 나누며 산다면, 마음이 얼마나 말랑말랑 부드러워질까. 우리나라는 어릴 때 자연스럽던 포옹과 키싱이 언제부턴가 또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는 우스갯소리처럼, 가족일수록 더더욱 스킨십을 나누지 못하고 살아간다. 가만 생각해 보니 참 이상도 하지. 가장 가깝고 친밀한 사람들인데, 가장 거리가 먼 사이가 되어 버린다.


포옹과 키싱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나도 한 번 살아보고 싶다. 마음이 한없이 열리고 말랑말랑해질 것 같다. 만약 내가 J와 키싱으로 인사 나누는 것을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겠지. 무슨 사이냐고 물어보겠지. 단순히 문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융통성이 없는 경직된 마음이 아닐지.


이렇게 내가 미국으로 가야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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