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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듯 혼자 아닌 생일.

오늘은 나의 생일.

by 방구석도인

양력으로 4월 15일,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생일이라고 하여 특별한 무언가는 없다. 평소처럼 오전 6시에 울리는 알람을 듣고 잠에서 깨어나, 30분만 더 자자며 6시 30분 알람을 맞춰두고 눈을 좀 더 붙였다. 6시 30분에 다시 한번 알람이 울렸는데, 이때는 정말로 일어나야 한다. 생일이라고 해도 늦잠을 자거나 출근을 안 할 수는 없다. 대신, 오후 3시 40분에 조퇴하기로 어제 상신해 두었다.


오늘 대학원 수업이 있는 날인데, 대학원은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생일인데 밤 8시까지 대학원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밤날씨도 제법 쌀쌀한데, 집에 와서 혼자 유튜브를 볼지언정 집에 일찍 오고 싶었다. 생일이면 엄마가 항상 집으로 불러 미역국을 끓여주고 케이크에 촛불을 붙여 준다. 내가 오늘 대학원 가지 않겠다고 하자 엄마가 같이 저녁 먹자고 했다.


출근을 하니, 특수학급에서 같이 근무하는 특수교육실무원이 손에 커피를 들고 나타난다. 내게 포장된 선물과 작은 카드, 바닐라라테를 건넨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로서 생일 아침을 달달한 커피로 시작하니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포장지로 포장된 선물과 손글씨 쓴 카드를 받는 것이 무척 오랜만이어서 정겨웠다. 아마도 십 대 시절 이후 처음이지 싶다. 포장지를 뜯어보니 휴대하기 좋은 작은 사이즈의 핸드크림이 두 개 들어 있었다. 오랜 만성 습진으로 인해 내 손바닥은 무척 건조해서 핸드크림은 내게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반가운 선물이었다. 비록 직장에서 일로 만난 사이일지라도 부담 없는 선에서 생일을 축하받으니 따뜻했고, 고마웠다.


실은 어제저녁부터 내 마음은 침울했고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사십 번을 넘게 맞이한 생일이 이제와 새삼스럽게 뭐가 특별하겠느냐만은, 이런 날만큼은 혼자라는 고독이 짙게 드리운다. 어릴 적부터 인싸와는 거리가 억만광년 멀었던 사람이었고 오히려 이방인에 가까웠다. 친구들을 초청해 나의 생일파티를 열어 주거나, 무척이나 갖고 싶지만 실용성은 떨어지는 커다란 곰인형 등의 생일 선물을 주기에 나의 부모님은 언제나 가난했다. 언니나 남동생은 그래도 친구 몇 명 모아두고 생일케이크라도 자르던 조촐한 파티를 해본 적이 있는데, 삼 남매 중 둘째 딸인 나는 깍두기 같은 존재이기에 돌사진조차 없다. 어릴 때부터 찬밥이더니 나이 들어서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망상이 폭주한다. 망상이든 현실이든 간에 나는 오늘 깊고 무거운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수십 년을 살아왔어도 내 생일을 기억해 주고 축하해 줄 벗도 없고, 특별한 날에 당연히 함께할 연인이나 배우자도 없고 이것이 내 인생의 성적표인가 싶다. 나는 혼자서도 괜찮다고, 모든 게 시절인연이라고 쿨한 척하기에는 외로운 게 사실이다. 결혼식 참석이나 축의금으로 진짜 친구 유무가 갈린다던데, 생일 또한 그런 날인 것 같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말로만 잘 통하는 좋은 친구라고 떠들면서 생일을 그냥 넘어간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딱 그 정도인 거겠지. 차라리 이 모든 게 나의 망상이었으면 좋겠다.


혼자인 나에게 어른들은 걱정하며 젊을 때는 좋지,라고 했는데 오늘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잘 통하는 친구, 좋은 친구라고 말하던 사람들은 전부 나보다는 자신의 배우자와 자식이 먼저니까, 나는 사람들에게 항상 세컨드의 신세를 면치 못한다. 나이가 드니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가정을 꾸리고 가족에게 헌신하며 살아가고 있다. 결혼 괜히 했다며, 나보고 결혼하지 말라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결혼을 했다. 배우자와 잘 안 맞는다면서 이혼도 안 하고 잘만 살아간다. 삼 십 대까지는 그냥 혼자인 느낌이었다면, 사십 대부터는 진짜 혼자인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지낼 것이다.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는 잘 지내야 한다.


친애하는 나에게,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상을,

세상이 끝날 때까지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구나.

네가 나인 게 얼마나 좋은지.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너를,

사랑한다. 네가 나여서 좋아. 네가 나인 게 참 다행이야.

우리 오늘 밤, 함께 고독을 음미해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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