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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 남자와 단둘이.

오랜만의 데이트였습니다.

by 방구석도인

2025.7.4. 금.

그와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한 날입니다. 학교를 조퇴하고 일찍 집에 와, 출근 복장과는 다른 흰색의 시스루 원피스로 갈아입고 화장을 했습니다. 만나기로 한 시간, 오후 5시에 맞추어 그의 학교로 갔습니다. 나를 본 그는 오늘 내가 너무 예쁘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관에 간 게 언제냐고 묻기에 2년 전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대화를 하며 우리는 영화관으로 갔습니다. 그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고 있고, 방글라데시에서는 국립대학이라 전액 무료라고 했습니다. 저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장학금을 전액 받는다니 정말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주라기 공원을 보았습니다. 저는 한글 자막으로, 그는 한국어를 못하니 영어인 원어로 영화를 시청했지요. 혹시 그가 갑자기 내 손을 잡지는 않을까 내내 긴장했지만, 그는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영화가 끝나니 저녁 8시가 다 되어가고 우리는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맥주를 마실 생각으로 집에 주차를 하고 인근의 펍으로 그를 안내했습니다. 양념치킨과 생맥주를 시켰지요.


이성과 단둘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것도, 펍에서 치맥을 하는 것도 제겐 너무나 오랜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기분이 좋았고, 즐거웠습니다.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가 서른한 살의 젊은 청년이라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가 외국인인 것도 좋았습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고나 할까요?


왠지 제가 젊어진 듯한 기분이고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과 한국어로 대화할 때 보다 자유롭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한국인과는 다른 관점으로 저를 바라볼 테니까요. 한국의 삼십 대 초반 남자라면 일단 저를 만난 일이 없을 겁니다. 그를 한국인 버전으로 호환해 보면 "서울대 나온 유학파 출신의 31살 남자,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 취업 가능한 유망한 연구원"인데 이런 한국 남자가 저를 만나지 않겠지요. 돈이 아주 아주 많다면 또 모를까요. 아마 그래도 44살의 여자를 만나지는 않을 겁니다. 40대의 여자는 출산이 어렵다는 이유로 같은 40대 남자도 기피하는걸요. 그는 한국인과 달리 나이나 재산, 지위 등을 따지고 계산해서 저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제 직업이나 재산에는 별로 관심도 없거니와 44살의 나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마치 20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대방의 배경이나 조건과는 상관없이 그 사람 자체만을 좋아하던 그 시절로 말이에요.


집으로 돌아와 자려고 누운 늦은 밤, 그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시간을 내주어서 고맙다고요. 저와 함께한 첫 번째 데이트였다고요. 정말로 즐거운 시간이었다고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 기분 좋고 즐거운 첫 데이트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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