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취미가 많았다. 그것은 그가 무엇에든 쉽게 질리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을 하든 구애받지 않을 만큼 시간과 자금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거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그의 고약한 성격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남자는 햇살 좋은 가을 날씨를 즐길 겸 취미활동을 하러 나온 참이었다. 흰색 상하의와 선캡, 선글라스가 CF에 나오는 모델 같은 모양새였다. 그가 긴 팔을 휘둘러 골프공을 때렸다.
짝짝짝, 캐디들이 박수를 쳤다. 골프공이 시원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그린 위에 안착했다.
그러나 남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왜 그래, 뭐가 불만이냐?"
옆에서 친구가 불렀으나 그는 들은 체 만 체 하며 골프채를 챙겼다. 캐디를 시켜 골프백을 매게 하고 카트로 향하는 그의 등을 향해 친구가 다시 외쳤다.
"야! 왜 그러냐니까!"
"덥잖아. 이게 가을 날씨야? 쪄 죽겠다."
"그렇다고 갑자기 가버리면 어떡해? 이거 내기 골프였잖아!"
"뭐 어쩌라고."
친구가 화를 내든 말든, 건성으로 대꾸한 그는 리조트로 향하는 카트를 탔다.
리조트 로비에는 사람이 많았다. 여행을 온 가족, 휴가를 즐기러 온 연인, 골프를 치러 온 사람들 ······.
그는 골프를 치러 온 일단의 무리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튼, 요즘은 개나 소나 골프를 친다니까. 취미를 바꿔야겠어."
그의 목소리를 들은 몇몇 골퍼들이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으나 그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그래서 패러글라이딩을 배우러 오셨군요?"
"네. 이거라면 어설프게 돈 있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들지 않을 거 같아서."
거만한 그의 대답에도 패러글라이딩 조종사는 넉살 좋게 말을 이어갔다.
"패러글라이딩이 돈이 좀 많이 드는 편이긴 하죠. 본격적으로 하려면 장비값도 만만치 않고요."
하긴, 돈 팍팍 쓰겠다는 고객 앞에서 뻗대는 인간은 별로 없지, 하고 생각하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조종법은 익혔으니 이제 혼자서 타 보죠."
"안 됩니다!"
조종사가 펄쩍 뛰며 반대했다. 그 뒤로도 실랑이가 이어졌으나 남자는 웃돈을 얹어주고 기어이 패러글라이딩을 혼자서 타고야 말았다.
"으아아악!"
사고는 한순간이었다. 돌풍이 불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변화무쌍한 고지대의 날씨가 그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날려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패러글라이딩과 함께 나무 사이에 매달려 있었다.
몸을 움직이려 하니 쑤욱, 하고 가볍게 빠져나와 공중에 둥둥 떠있는 자신의 반투명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죽었음을 안 건 그 순간이었다.
사인은 질식사. 얽히고설킨 패러글라이딩의 줄이 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시퍼렇게 질린 자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안 돼, 안 돼. 말도 안 돼!"
비명을 지르며 현실을 부정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