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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어느 날, 올해 수능을 며칠 앞두고 오른손 검지에 끼고 있던 반지를 뺐다. 21살부터 낀 반지였다. 오른손 검지에 끼는 반지는 꿈과 의지를 의미한다고 해서 삼수할 때부터 늘 끼고 있었다. 심지어 내 사주에 금이 부족하다고 해서 꼭 금속으로 된 반지를 찾아서 꼈다. 꿈과 의지를 의미하는 '오른손 검지'에, 내 사주에 부족한 '금'을 반지로 꼈더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불안해지거나 공부를 하기 싫을 때면 일부러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반지는 수능 시험장에서도 톡톡한 역할을 했다. 4교시 한국사 시간에 30분이 주어지는데, 사실 문제를 풀고 마킹까지 하는 데에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면 남은 20분은 고통의 시간이다.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나에게 20분은 지나치게 긴 시간이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뭐가 문제일까',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 '내 인생에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나 자신이구나'. 이런 생각만 하면서 20분을 보내면 탐구 시험을 잘 치기는커녕 눈물이 앞을 가려서 시험지도 제대로 못 볼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손을 움직이기로 했다. 눈을 감고 반지를 돌렸다. 반지를 돌리는 그 행위에만 집중했다. 쓸데없는 생각이 스멀스멀 내 머릿속에 발을 들이려하면 반지를 돌리고 있는 내 모습을 내 머릿속 큰 스크린에 띄워 쫓아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 '내가 반지를 돌리고 있다'는 생각만 했다. 나는 그렇게 20분을 무사히 보냈다. 반지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 오른손 검지에 반지는 없다. 지금 보니 뺀 지 2주는 넘은 것 같은데 아직 흔적이 남아 있다. 새삼 반지와 함께 했던 시간이 꽤 길었다는 게 실감 난다. 왜 뺐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이게 아직도 내 손에 있었다고?' 싶었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곰인형을 옷장 속에서 발견했을 때 '이게 아직도 우리집에 있었다고?' 했던 딱 그런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냥 뺐다. (반지를 버리지는 않았다. 내 보물상자에 잘 모셔뒀다.) 예전에는 반지를 빼거나 잃어버리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반지를 빼도 세상도 나도 아무렇지 않았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컴컴해지거나 천둥번개가 치거나 비바람이 불지는 않았다. 그냥 반지가 있던 그 자리가 하얗게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반지에 나의 꿈과 의지를 맡겨놓았었다. 그런데 반지에게 그걸 맡겨두면 안 되는 거였다. 내 마음속에 둬야 했다. 그걸 반지한테 다 넘겨버려서 내 마음이 그렇게 불안했던 것 같다. 작년 수능을 준비하면서 나는 나의 최선이 어디까지인지를 알게 됐다. '나'에 대해 한 걸음 더 다가간 거다. 그래서 자존감도 서서히 회복되고, 자연스럽게 꿈과 의지도 다시 내 마음속으로 되돌아왔다. 반지로 간신히 붙잡아두고 있던 꿈과 의지가 다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으니 반지는 이제 보내줄 때가 된 거다. 그래서 반지를 빼도 아무렇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조금 성장한 것 같아서 꽤 뿌듯하다. 반지를 낀 후로 수능을 6번이나 더 봤는데, 이제라도 '애착 반지'를 졸업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반지를 뺐더니 역설적이게도, 반지를 처음 꼈던 그날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토이스토리 3에서 앤디가 대학에 가면서 장난감들과 작별하게 된다. 새로운 친구에게 장난감들을 소개시켜주고 떠나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우디는 '잘 가, 파트너'라며 보내준다. 나도 반지한테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 나의 수험 생활을 든든하게 지켜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