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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Jan 03. 2025

향기 없는 꽃

친구의 문상객

< 향기 없는 꽃>     



전남 장성고(송파학원)는 전국에서 입시생들에게 손꼽히는 학교 중의 하나다.

전국 시군구 가운데서 모든 영역의 점수가 1위, 전교생의 78%가 기숙사 생활, 술, 담배, 핸드폰 3가지 없다는 명문고교다.

특성화고가 아닌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그것도 지방 외곽에 있는 학교의 이 같은 저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장성고 신화 뒤에는 설립자이자 이비인후과 의사인 반상진(79세) 선생이 있었다.

지역 유지들의 권유와 요청에 따라 1974년 고창 남중학교, 1984년 장성고등학교등 송파학원을 설립한 그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무간섭 원칙”에 따라 전적으로 교사들에게 학교 운영을 일임하고 졸업식과 입학식을 제외하고는 지금도 학교 근처를 지나면서도 학교에 들르는 일이 없다고 한다. 

자신의 사재를 털어 설립한 재단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고집하지 않는 겸양의 덕은 참으로 놀랍다.     

자신과 조금이라도 이해관계가 있는 일이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투고 투쟁하는 요즈음의 세태에 귀감이 아닐 수 없다.

또한 79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아침 7시에 일어나 1시간여 운동을 하고 8시부터 하루 10시간씩 병원 진료를 쉬는 날이 없고, 점심은 밥, 국, 반찬 한 가지가 나오는 시장 통 국밥을 즐긴 다 고하니 그 근면함과 청빈함이 또한 본받을 만하다.

뿐만 아니라 국내 최장시간(15년), 국내 최대인원(20만 명) 무료 진료봉사의 기록도 가지고 있다 한다.

또한 3가지가 없는 삶을 산다는데 차, 통장, 핸드폰이 그것이고 수필가로도 일가를 이루어 22권의 수필집도 집필했다고 하니 그분의 삶은 가히 지란의 향기에 견줄 만하지 아니한가.      



오늘 우리 학원에 다니는 중학생 3명이 함께 학교 일로 지각한다는 전화가 왔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밤 9시까지 무슨 급한 일이 길래 수업을 다 늦는 건지. 

늘 성실하라고 가르치는 나로서는 적잖이 화가 났다.

10시가 다된 시각에야 쭈뼛거리며 아이들이 들어섰다. 

차마 말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의심스러운 마음으로 물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늦었니?”

“... 저희 반 친구가... 자살을... 문상을...”

“아니, 세상에 끔찍하구나. 왜 그랬다니?”

“... 게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지하 월세 방에 살았는데 경제가 어려워서 부모님이 자살하며 연탄불을 피웠는데... 그래서 온 가족이... 부모님 유서에 우리 아들 맡길 데가 없어서 함께 데려간다고... 아마 친구는 자기도 모르고 죽었을 거래요...”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고생했다는 말만 했다.   

  

그랬다.

아이들은 오늘 친구의 문상객이 되어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울었다.

이 어린아이들이 받았을 충격은 또한 얼마나 클까.

나는 오늘 이 밤 전혀 낯선 죽음들 앞에서 죄인이 된 마음을 추스를 길 없다.

만약 단 한 명이라도 그들의 고통에 귀 기울여 주었더라면, 단 한 명이라도 조금만 참으라고 좋을 때도 있을 거라고, 나도 때론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적이 있었다고 손 잡아 줬더라면 그 가족이 연기 속에 그렇게 스러져 갔을까.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는 이에서 더 큰 사랑 없다 했던가.

나의 잘못에는 유하고 남의 실수에는 모질지 않기를.

나의 이익에는 분주하고 남의 이익에는 한가하지 않기를.

나의 아픔에는 예민하고 남의 아픔에는 둔감하지 않기를.

냉정한 머리와 따듯한 가슴을 동시에 가지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늘 그 불가능의 끝에 서기에 수고로운 삶이 되기를.

      

오늘 이 밤, 늦은 퇴근길 어두운 차 안에서 내 소매에 코를 비벼본다.

아무런 향기도 없이 살 냄새만 비릿하다.

난 언제쯤 향기 있는 꽃이 되려나...


난 아직도 향기 없는 꽃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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