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떠는 딸에게
< 너의 속도 >
우리 큰 딸아이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에 합격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학교가 아니어서 입학을 포기하고 재수를 결심했었다.
그러나 나는 말렸다.
우선은 합격한 학교에 입학해서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2학기부터 반수를 하라고 권유했다.
첫째, 혹시 재수에 실패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둘째, 대학이라는 곳이 다녀보면 생각보다 마음에 들 수도 있으니 굳이 기회를 버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완강했다.
나 역시 완강했고 결국 반수 하는 것을 조건으로 입학을 했다.
입학 후 아이는 대학 공부와 입시 공부 두 가지를 병행했다.
그해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한 후 지방의 재수 기숙학원으로 들어갔다.
학원비는 만만치 않았다.
한 달에 몇백만 원 했기에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에게 마지막 도전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꼭 좋을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아쉬움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해 9월 지방에 위치한 기숙학원에 입학했다.
그런데 아이는 기숙학원에 적응을 못하고 여기저기가 아파왔다.
또한 이미 1월부터 재수를 시작한 아이들에 비해 모의고사 결과도 낮았고, 진도가 터무니없이 늦었다.
어느 날 아이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아빠, 다른 아이들이 너무 빠르고 잘해서 나 너무 힘들어, 학원비도 한두 푼이 아닌데 아빠, 엄마에게 부담만 주는 게 아닐까 고민이야. 차라리 이제라도 포기하고 퇴소할까?”
“아빠는 네가 꼭 재수에 성공하길 바라고 너를 보내준 것이 아니란다. 다른 사람의 속도에 네가 맞출 필요 없단다. 너는 너의 속도로 뛰거라.”
몇 개월의 힘든 기숙학원 생활을 마치고 아이는 수능을 치렀고 결국 서울의 유명대학에 합격했다.
더욱이 4년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하여 학원비는 결국 보상받을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자기와 함께 기숙학원에서 공부했던, 더 먼저 재수를 시작했던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떨어진 것이었다.
사람마다 삶의 속도가 다 다르다.
굳이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뛰려고 하면 불행한 결과를 만나게 된다.
혹 목표한 곳에 도달한다 하여도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될 뿐이다.
자기의 속도로 뛸 때 가장 행복하고 결과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