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①] 지지와 공감이 부족한 엄마

by 이상혁 심리상담가

엄마라는 존재.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 같다가도, 때로는 지구 반대편보다 더 멀게 느껴집니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가장 깊숙이 박혀 있죠.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엄마라는 이름의 보호막 속에서 자랐지만, 정작 제대로된 안정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고 말하는 딸들이 있습니다. 엄마가 늘 곁에 있었음에도, 기댈 수 없었던 사람들.


어릴 때 속상해서 울면 "뭐 그런 걸로 우니?"라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토로하면 "왜 그렇게 예민해?"라는 반응이 돌아옵니다. 고민을 진지하게 털어놓으면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왜 그래?"라는 냉정한 대답이 날아오죠. 그러다 보면 점점 말하지 않게 됩니다. 어차피 엄마는 내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자란 딸들은 자기 감정이 잘못된 것처럼 느끼며 삽니다. 화가 나도, 속상해도, 외로워도, 서러워도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건가?’라는 의심이 먼저 들어요. ‘이 정도는 참아야 하는 건가?’, ‘이런 걸로 힘들어하는 내가 이상한 걸까?’


이렇게 감정을 억누르다 보면 결국 자기 감정을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처음에는 엄마 앞에서만 참았지만, 점점 친구들 앞에서도, 연인 앞에서도, 직장에서도 감정을 숨기죠. 감정을 드러내는 게 두려워지고, 결국 표현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반대로, 어떤 딸들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눌러왔던 감정이 한순간에 폭발하는 거죠. 평소에는 참고 있다가도 작은 일에 쌓인 감정이 터져 나옵니다.


감정을 숨기는 것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도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문제입니다. 감정이 건강하게 받아들여진 경험이 없기 때문이죠.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런 엄마들도 대부분 비슷한 방식으로 자랐습니다. 엄마도 피해자였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내 아픔이 덜해지지는 않죠.


엄마는 어쩌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수도 있지만, 딸이 받아들인 현실은 다릅니다. 엄마가 했던 말, 엄마가 보여준 태도, 엄마가 나를 대했던 방식이 결국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면, 그것이 곧 진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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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든 것은,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엄마가 한 번이라도 내 감정을 온전히 받아줬다면, 내 아픔을 진지하게 들어줬다면, 이렇게까지 상처받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끝내 공감해 주지 않았죠. 그러면서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라고 말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정작 내 마음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엄마의 사랑을 믿고 싶지만, 믿을 수 없죠.


이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딸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한 문제를 겪습니다. 누군가가 내 감정을 무시하면, 엄마가 했던 말들이 떠오르면서 ‘역시 내 감정은 별것 아니구나’라고 스스로를 무시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려고 하면, ‘이런 말 하면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남들도 다 힘들지’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참고 견디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죠.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에서도 늘 불안합니다.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상대가 내 감정을 외면할까 봐 두렵고, 친밀해지고 싶으면서도 거리감을 두려워하죠.


이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엄마가 인정해 주지 않았던 내 감정을, 이제는 내가 인정해 주는 겁니다. 엄마가 끝내 이해해 주지 않았던 내 아픔을 이제는 내가 이해해 주는 거예요. 엄마가 해 주지 못한 공감을 이제는 내가 나에게 주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의 사랑을 바랐지만, 지금의 나는 나를 스스로 보듬을 수 있습니다. 엄마에게 들을 수 없었던 말을 이제는 내가 해 주면 됩니다.


“그때 정말 속상했겠구나.”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네 감정은 너무나 당연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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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관계가 언젠가는 회복될 수 있을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엄마의 인정을 갈망하며 괜찮다고, 모든 게 좋아졌다고, 아무 문제도 없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방식이 아니라, 내 경계를 세우고 내 감정을 스스로 지켜내는 법을 배운 후에 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딸들은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충분한 심리적 안전감을 확보한 후에야 비로소 엄마와의 새로운 관계 형성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때로는 관계의 한계를 인정하고, 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정서적 지지를 다른 건강한 관계에서 찾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습니다.


내 회복을 위해 엄마의 변화만을 기다릴 필요는 없어요. 엄마가 변하지 않더라도, 나는 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치유될 수 있습니다.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나는 이제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어요. 엄마가 내 마음을 몰라줬어도 괜찮습니다. 나는 이제 내 마음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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