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이라는 유명한 동요가 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들은 ‘곱슬머리’ 하면 자기도 모르게 희극적인 분위기로 이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노래가 전혀 즐겁거나 재밌지 않다. 왜냐고? 곱슬머리는 내게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니까.
우리 집은 내 동생만 곱슬머리가 아니라, 나를 비롯해 가족 모두가 곱슬머리다. 아빠의 짧은 머리는 살짝 구불거렸고, 엄마의 단발머리는 더 심하게 구불구불했다. 내가 곱슬머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였다. 초등학교 때는 엄마가 내 머리를 늘 단정하게 뒤로 묶어주셨기에, 나는 그냥 잔머리가 유난히 많은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운명처럼 마주한 규칙이 있었으니, 그 시절 여학생들의 숙명, 귀밑 3cm 단발. 나도 그 칼끝을 피할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 머리가 다른 아이들과 많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커다란 헬멧을 쓴 것처럼 머리가 전체적으로 붕 떠 있었고 무엇보다 앞머리는 눈썹 위부터 유난히 구불거렸다. 차분하게 해 보려 물을 바르면 더 부풀어 오르고, 습한 날이면 잔머리까지 일제히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궁여지책으로 밤에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자 보기도 했다. 아침에 벗으면 머리가 잠시나마 차분해 보였고, 내 거친 머리카락에는 없는 줄 알았던 윤기까지 살짝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모자에 들어가지 못한 귀밑 머리카락들은 반항하듯 더 크게 뒤틀려 따로 솟아올라 있었다. 답이 없었다. 처음으로 짝사랑하게 된 남학생 앞에서도 곱슬머리가 부끄러워 자신 있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엄마에게 엉엉 울며 따져 물었다.
“엄마는 왜 나를 곱슬머리로 낳았어!”
엄마는 학창 시절, 친구들이 ‘자연산 공짜 파마’라며 곱슬머리를 아주 부러워했다고, 내 머리도 사실은 아주 예쁜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물론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이모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엄마도 아침마다 젓가락 두 개를 불에 달궈 머리를 펴고 학교에 갔다고 했다. 곱슬머리 때문에 겪었을 엄마의 눈물 젖은 젓가락 학창 시절을 상상하니 내 마음도 시리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사정은 똑같았다. 곱슬거리고 붕 뜨는 머리가 너무 싫어서 억지로 단발을 모아 묶고 등교했다가, 첫날부터 학생부 주임 선생님께 붙잡혀 혼이 났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서러운 나날을 보내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천지개벽할 만한 파마가 세상에 나타났다. 곱슬머리를 생머리처럼 펴 준다는 기적 같은 발명품, 바로 매직 스트레이트 파마였다. 미용실로 달려가 머리를 펴고 나니, 내 머리는 물미역처럼 축 늘어졌다. 그래도 붕 뜨는 것보다는 백 번 나았다. 에디슨의 전구보다도 더 빛나는 발명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해마다 두 번씩, 말 그대로 마법 같은 ‘매직 스트레이트’의 힘을 빌려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마흔이 되자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 흰머리가 슬그머니 올라왔다. 친구들은 새치 염색을 하기 시작했지만, 원래 가늘었던 내 머리카락은 매직 스트레이트로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염색은 엄두도 못 냈다. 그런데 흰머리는 점점 늘어간다. 이제 나는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걸 직감했다. 새치 염색을 택할 것인가, 매직 스트레이트를 택할 것인가.
나는 인생의 동반자였던 매직 스트레이트를 포기하기로 했다. 흰머리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매직’ 없이 머리를 길러내는 삶을 시작했다. CGM이라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도 했다. ‘Curly Girl Method’의 약자로, 곱슬머리 관리법과 경험담을 공유하는 카페였다. 그곳 회원들은 서로의 곱슬머리를 예쁘다고 칭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당장 미용실에 가서 매직 스트레이트를 하고 싶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위로와 체념, 다짐과 절규가 뒤섞인 수다방이었다. 이제 매직 스트레이트를 하지 않은 지 1년 6개월이 되어 간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이렇게 오랜 기간 곱슬머리를 기른 적은 없었다. 오른쪽, 왼쪽, 뒤쪽의 곱슬의 형태도 제각각이고, 무엇보다 습하면 습할수록 잔머리들이 제멋대로 솟아올라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딸아이는 머리를 막 말린 내 모습을 보고 ‘집이 망해서 길거리를 배회하는 여자’ 같다고 표현했다. 결국 모자를 쓰거나 질끈 묶으며 이 여름을 버텨내고 있다.
이렇게 징글징글하고 보기 싫은 곱슬머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탈모에는 곱슬이 차라리 낫다고 한다. 머리가 가라앉으면 없는 머리카락이 더 없어 보이지만, 곱슬은 붕 떠서도 아직은 괜찮아 보이는 착시효과를 주기 때문이라나. 나이가 들고 탈모의 길에 접어들며 알게 된 곱슬머리의 유일한 장점이다. 구불거리든 반듯하든, 우선 내 얼굴 위에 있어 줘서 감사한 머리카락인 것이다. 지난달에는 어떤 곱슬머리 유튜버가 추천한 안티 프리즈 스프레이와 오일을 샀지만 실패였다. 오늘도 ‘이번엔 다르겠지’ 하며 또 다른 오일을 주문한다. 지갑은 홀쭉해지는데, 곱슬머리 쇼핑 목록은 끝이 없다. 이렇게 하나둘 사 모으고 있는 헤어제품에 ‘매직 스트레이트’ 파마보다 많은 비용이 더 드는 것이 확실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남은 인생은 내 원래의 머리와 함께 살아가기로 한 것을.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나에게 일생일대의 개구쟁이는 동생이 아니라 바로 이 곱슬머리다. 이렇게 지지고 볶으면서 내가 머리카락에, 머리카락이 나에게 적응해 나가야지. 곱슬머리가 내 인생의 희극이 되어 줄 날이 올까? 모르겠다. 오늘도 거울 앞에서, 또 한 번 오일 뚜껑을 연다.
붕 뜨고 잔머리가 날리는 곱슬머리 ㅡAI 제작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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