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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왈기 Dec 15. 2024

영화 <트루먼 쇼> 감상 [★4.5]

예수가, 부처가, 모두가 사랑하는 주제 '인류애'를 다룬 영화

명장면을 그렸습니다




 <트루먼 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소재도 독특하지만 결말에서 주제 의식이 드러났기 때문에 좋아한다. 무엇보다 카메라 기법, 색감, 배우들의 연기 등 모든 요소가 하나의 주제를 향해 일관되게 달려간다.


 잘 관찰해 보면, 카메라는 항상 주인공 트루먼을 몰래 찍는 듯한 구도다. 낮은 곳, 높은 곳에 골고루 숨겨놓은 카메라가 트루먼을 담아낸다. 그러다 보니 카메라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또한, 숨길만한 곳에 놓다 보니 트루먼의 모습을 중앙이 아닌 곳에서 잡기도 한다.


 트루먼은 뭐가 좋은지 영화 내내 거의 웃고 있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도 밝다. 이것은 트루먼의 삶이 쇼맨십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증거기도 하지만,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영화 주제를 유쾌하게 환기시켜 준다.


 결말로 다가갈 때쯤, 모든 역경이 끝나고 잔잔한 바다에서 푸르른 하늘색이 칠해진 벽에 인접하는 순간은 최고의 장면이다. 촬영 내내 무던하던 색감이 비로소 새파란 색으로 덧씌워진다. 기묘하게도 긴장이 되기까지 한다.


 분명 아름다운 바다 풍경에 젖어 황홀한 감정을 맛봐야 하는데, 마지막 관문에 도달한 듯 떨린다. 무대에서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놀아나게 된 트루먼은 어떤 말을 뱉을까?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뒤로하고 밖에선 트루먼을 위한 시위가 한창이다. 인권을 박탈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트루먼을 위해 싸워주는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독심술을 써보진 않았지만, 아마 그들은 크리스토프를 증오할 것이다. 트루먼 역시 자신의 인생을 인형극으로 만든 크리스토프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루먼은 부정당할뻔한 자신의 삶을 쇼로 만든다. 그럼으로써 마지막까지 쇼로 끝나게 한다.



"Good morning!
In case I don't see ya,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그의 시그니처 대사는, 관객들을 향한 마지막 인사이자, 스스로 삶을 긍정하는 선언이다. 자신을 가둔 크리스토프를 증오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트루먼은 자신의 삶을 ‘쇼’로 받아들인다. 이는 무엇을 뜻할까? 예수님이, 부처가, 모두가 사랑해 마지못하는 주제, 인류애다. 자비라고도 불리고, 사랑이라고도 불린다.


 크리스토프를 가장 미워해야 마땅한 트루먼은 자신이 놀아난 쇼를 긍정함으로써 자비를 베풀었다. 그렇다. 그 한 마디 덕분에 처음부터 '놀아난' 인생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저 트루먼은 신나게 자신의 삶을 즐겼고, 마지막까지 웃으며 무대를 내려왔다.


 그 쇼맨십이 어디부터 자의일지 타의일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게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트루먼과 함께한 모든 사람들은 그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없이 쇼를 즐길 수 있었다. 트루먼은 트루먼 쇼를 포용했다.


트루먼은 자신을 관람하던 관객들에게만 기쁨을 준 것이 아니다. 영화 밖에 존재하는 우리들까지 긍정했다. 트루먼 쇼의 교훈을 '자유의 소중함'이라고 해석한 것도 틀리지 않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의미는 '인류애'다. 극 내의 인물 뿐 아니라 밖의 인물의 마음까지 채우는, 따스한 인류애. 그것이 내가 해석한 트루먼 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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