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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alnuke Jan 02. 2025

여섯 달 동안의 나의 휴직이야기.

1화. 프롤로그

먼저, 쉬어야 함에도 그런 선택을 쉽게 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써야 할 글 같습니다. 다른 여느 직장에서 처럼, 많은 대가를 치루어야 했었고, 또 치루어야 할 것들이 남아있을지 모르는 결정이었지만, 계획하고 실천은 할 수 있었던 결정이었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했던 소중한 여섯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경험했고,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복기해 보며, 의미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휴직을 마음먹게 된 트리거는 당연히 회사 때문이었어요. 아니, 회사 내 사람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휴직을 하고 싶었던 욕망의 기저에는 더 많은 다른 것이 들어있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순 없습니다. 그 속에는, 구겨지고 지저분한 각종 흔적들이 뒤엉켜 있었는데, 기름과 불씨가 한 번에 떨어져 버려서 그 불을 끄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었다는 것을요.


피로했어요. 정서적으로 너무 피로했어요. 저는 14년 동안 같은 회사를 다녔는데, 여러 가지 비상식적인 사건으로부터 받은, 제대로 위로받지 못했던 충격도, 너무 잦은 변화에 노출되어 있었던 환경도, 개인적인 삶에서도 누적된 불행한 일들의 흔적들도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던 원인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질렸었어요. 문화에 질렸었어요. 작은 머리에 많은 손발을 가진 조직구조에서 오는 경쟁과 정치, 생존을 위해 벌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투, 그러한 분위기에서 승리를 쟁취한 자들의 보상심리, 연공서열 중심의 문화에서 오는 부당함 등 유교문화와 부머(Boomer) 세대의 문화가 이상하게 혼합된, 행복의 기대치를 지속적으로 낮추게 만드는 문화에 질렸었어요.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싶은데,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느꼈던 무력함도 견디기 힘들었던 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아팠었어요. 저는 그런 문화에서 살아남을 만큼, 가진 것이 많거나 강하게 살아오지 않은 평범한 내향인인데, 각종 악성적인 사회적 자극과 업무적인 충격들이 저를 아프게 만들었고, 이런 곳으로 어쩌다 오게 되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 때 즈음에는 소중한 사람들까지 원망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니, 가슴이 아팠어요. 아픔을 잊으려고 매일같이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혼자 마시다 보니, 건강도 체력도 바닥이 나 버리더라구요. 불과 수개월동안 내장지방은 10kg이 넘게 쪘지만, 퇴근하고 나서는 생각을 지우기 위해 또 소주잔을 들며 저녁끼니를 떼우고 있노라니, 이 굴레가 끝나지 않을 것 만 같아서 불안했어요.


그래서, 저는 약을 먹고, 시간을 가지며 쉬기로 결정했습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조직에서도 저를 원하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휴직은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승인되었고, 그렇게 7월부터 저는 6개월간의 가료와 휴식의 기간을 가지게 되었어요. 

출처 : Pixabay

그 시간을 거의 다 보내고, 다시 원래 있던 회사로 돌아가려는 지금, 지난 나의 여섯 달을 한마디로 줄여보라고 한다면, 정처 없었다고 표현하고 싶네요. 지난 수 십 년간의 삶이 그랬듯, 지난 나의 여섯 달도 여전히 정처 없었어요. 낮에는 회사, 밤에는 삶이라는 벌판에서 정처 없이 방황했던 것과는 다르게, 낮이고 밤이고 삶이라는 벌판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게 되었다는 것이 달랐던 점이네요. 젊을 때는 나의 길은 내가 찾아 개척한다는 생각으로 탐험했던 청년과 벌판이, 지금은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는, 어쩌면 갇혀서 같은 곳을 빙빙 돌고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아저씨와, 그 아저씨 보다 훨씬 키가 커서 한 치 앞을 보여주지 않는 옥수수밭으로 변해버린 들판이 주는 막막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고민해 보고 싶었어요,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만든 트리거를 마음속에서 지우기 전에 말이에요. 


저는 저를 그동안 얼마나 잘 보살폈고, 얼마나 잘 위로했을까요? 다시 그 시간으로 되돌린다 하더라도, 보낸 시간을 채운 것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은 자연스레 보내지게 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요. 여름부터 시작한 저의 휴직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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