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버스가 가져다준 소확행
요즘, 나의 하루는 눈을 뜨는 순간부터 어쩐지 조금 미안하다.
예전엔 새벽같이 알람 소리에 눈을 비비며 일어났고, 단 몇 분 차이로 놓치는 첫차를 잡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야 했다. 정류장에서 콜록이며 줄을 선 사람들 사이에 끼어 한 뼘의 자리를 얻고, 다시 사람들에 밀려 지하철로, 또 환승 통로를 숨 가쁘게 걸어야 했다.
한 번, 너무 피곤해서 지하철에서 꾸벅 졸다 환승역을 지나쳐버린 적도 있다. 그날은 눈물이 찔끔 났다. 별 일 아닌데도, 그냥 그 고단함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도 모르겠는 그 무게에 나도 모르게 터져버렸던 것 같다. 그렇게 멍하니 반대편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런 일상이 과연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
그러다 어느 날, 동료가 무심하게 한마디 했다.
“우리 집 근처에 광역버스 생긴대. 갈아탈 필요 없이 회사 앞까지 바로 간대.”
나는 그저 “와, 좋겠다” 하고 웃었지만, 그날 밤 집에 돌아와 포털 사이트를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그것도 우리 아파트 앞 정류장에도, 다음 달부터 광역버스가 생긴다는 것.
처음 그 버스를 탔던 날을 기억한다.
적당히 조용한 새벽의 차 안. 자리에 앉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더 이상 사람들 사이를 밀치지 않아도 됐고, 계단을 올라가며 숨을 몰아쉴 필요도 없었다. 내 몸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 안도하며 자리에 녹아들었다.
‘이제야 조금, 살아 있는 느낌이 들어.’
그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평온함 속에서 며칠 지나지 않아 내 마음은 또 다른 상상을 시작했다.
‘이젠 재택근무까지 된다면 완벽할 텐데.’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고, 부드러운 햇살 아래 책상에 앉아 고양이의 낮잠 숨소리를 들으며 일한다면… 그건 정말,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아침일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상상에 빠져 있던 어느 날, 퇴근길에 버스 창밖으로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정류장에서 아기를 업은 채 숨을 고르며 서 있는 젊은 엄마. 한 손엔 텀블러, 다른 손엔 회사 서류가방을 든 그녀는 고단해 보였지만 눈빛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내 마음속에 어떤 문장이 울렸다.
“이 편안함은, 누구의 몫도 아니었다. 그저 내게 우연히 주어진 행운일 뿐이었다.”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편해지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고, 그 익숙함은 감사함을 조금씩 마비시켰다.
예전에는 10분 더 자려고 커피를 포기하던 내가, 이제는 커피 한 잔을 여유롭게 즐기면서도 여전히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 안의 그 작고 이기적인 마음을 마주보게 되었다.
편해지고 싶은 마음은 잘못이 아니지만, 계속해서 ‘더 편함’만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쩐지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이제는 가끔, 일부러 버스를 타지 않고 예전처럼 지하철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 낯익은 혼잡 속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확인하고, 다시 감사함을 배운다.
편안함은 목적지가 아니라,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알맞게 누릴 줄 아는 마음이 진짜 어른스러움이라는 것도,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누군가 물었다.
“그래서 요즘엔 어떤 출근길이 가장 좋으세요?”
나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아침처럼,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길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