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더 차분한, 아니 초연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수만 번 물수제비 던져도 조금 울렁이다 마는, 지독하게 넓은 호수처럼. 진부한 말인가? 그럼 이렇게 말해볼래. 비절참절한 일이 경고 없이 닥쳐도 대책 있나 싶게 평온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여자가 되고 싶어. 나를 잡아 삼키려는 대상이 오려다가도 귀신 본 것 같이 놀라며 유턴하게. "갈길 가라 이것아!"라고 외칠 거야. 더 현실적으로 설명해 보라고? "저 애는 도무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뭔 일이 생겨도 놀라질 않아"라는 21세기 전설의 주인공이 되는 게 목표야. 이 열망이 불꽃처럼 타올라 이제는 내 작은 심장으로 감당할 수가 없어. 손가락 사이로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시련을 기다리며 벌벌 떠는 액션이 지겨워. 나 자신이 싫다는 건 아니고, 같은 노래를 몇십 년간 반복재생했으니 새롭게 탈피할 때가 왔다는 거지. 그래서 몸이 근질근질해. 사람의 생각이 다른 길로 흐르는 것은 참 복되면서도 신비로운 일이야. 얘기 들어보니 내가 강인해진 거 같다고? 아니, 나는 그저 예전의 방식에 불가역적으로 물렸을 뿐이야. 고로 오늘부터 눈부시도록 새로운 장르가 시작되는 거지. 배우는 그대로인데 대본을 엎고 연출팀을 완전히 물갈이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