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누구이며, 고도는 올 것 인가?
막은 황량한 시골길에서 시작되며, 무대 중앙에는 말라버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두 남자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은 길가에 앉아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대화
이들은 처음부터 혼란스럽고 단조로운 대화를 나누며, 아무런 구체적인 정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에스트라공은 자신의 신발이 너무 꽉 껴서 불편하다고 불평하며 신발을 벗고, 블라디미르는 자신의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대화는 삶, 죽음, 그리고 기다림의 이유에 대한 철학적이지만 무의미해 보이는 질문과 농담들로 채워집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왜 여기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고도가 누구인지, 왜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습니다. 이들은 고도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구원을 줄 것이라고 희망합니다.
포조와 럭키의 등장
잠시 후, 포조라는 남자와 그의 노예 럭키가 등장합니다. 포조는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로, 럭키에게 짐을 지우고 명령을 내리며 그를 잔인하게 다룹니다. 럭키는 포조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며,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항의하지 않습니다.
포조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자신이 "럭키를 팔러 가는 길"이라고 설명합니다. 럭키는 포조의 명령에 따라 춤을 추거나, "생각"하라는 명령을 받고 독백을 시작합니다. 럭키의 독백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혼란스럽고 무의미한 말들로 가득 차 있으며, 이는 인간의 지식과 언어가 필연적으로 가지는 무질서함과 부조리를 상징합니다.
소년의 등장
포조와 럭키가 떠난 후, 한 소년이 나타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소년은 "고도가 내일 올 것"이라 말하지만, 그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여전히 고도를 기다리기로 결정하며 막은 끝납니다.
두 번째 막은 첫 번째 막과 비슷한 상황으로 시작됩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고도를 기다리고 있으며, 첫 번째 막에서 있었던 많은 대화와 행동이 반복됩니다.
변화와 반복 속의 정서적 변화
두 인물은 여전히 고도를 기다리지만, 첫 번째 막에 비해 더 큰 피로감과 권태가 느껴집니다.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리며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기다림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들의 대화는 여전히 단조롭고 무의미하게 보이지만, 점차 희망이 사라지는 느낌을 줍니다.
포조와 럭키의 재등장
포조와 럭키가 다시 등장하지만, 이번에는 포조가 시력을 잃었고, 럭키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전과는 달리 더 연약하고 의존적인 상태로 변했으며, 이는 시간의 흐름과 삶의 덧없음을 상징합니다. 포조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시간의 의미를 묻지만,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합니다.
소년의 재등장과 불확실한 희망
다시 소년이 나타나 "고도가 내일 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블라디미르는 소년이 전날 자신들을 방문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자 혼란스러워합니다. 에스트라공은 점점 더 무기력해지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고도를 기다리는 결정을 내립니다.
마지막 장면: 움직이지 않는 두 사람
극의 마지막 순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떠나자"라고 말하지만, 무대 위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 장면은 이들이 기다림을 멈추지 못하고 반복되는 삶 속에 갇혀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20세기 부조리극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이 연극 대본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인물이 끝없이 "고도"라는 존재를 기다리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고도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그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이 작품의 핵심입니다. 고도는 독자의 관점에 따라 신일 수도, 구원이 될 수도, 혹은 단순히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이나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주인공이 그 기다림 자체를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두 인물의 의미 없는 대화들이 반복되면서도 묘한 리듬과 철학적 깊이를 만들어낸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조롭게 느껴졌던 대화들이 점차 그들 내면의 불안과 희망, 그리고 부조리한 삶의 면면을 드러냅니다. 이들이 "고도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그 기다림을 멈추지 않는 모습은, 우리 모두가 살아가며 느끼는 모순적인 감정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두 사람이 미지의 인물인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등장인물은 세 명이 더 나옵니다.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인 포조, 그리고 그의 늙은 노예인 럭키, 고도의 심부름꾼 소년의 등장은 사실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포조와 럭키는 이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을 기다리기 위해 참아야 하는 고통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기다려온 “고도”가 내일 올 것이라고 말하는 소년은 어쩌면 우리가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내일로 미루려는 그 기존의 내면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소년은 다른 역할은 없이 그저 “고도”라는 인물이 내일 오겠다는 소식만 전달한 뿐이지 어떤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주인공은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다시 “고도”를 기다리기로 합니다. 이는 우리가 늘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다짐을 하지만 결국 바로 시작하지 못하고 내일 또는 다음 주로 미루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표현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 “고도”가 그 오랜 시간 동안 오지 않았지만 이 두 사람은 평생을 내일 올지도 모를 “고도”를 기다리며 오늘을 의미 없는 대화를 하며 낭비했던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란 결국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시작”의 의미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을 개인의 관점보다 큰 사고로 생각해 본다면 고도가 단순히 한 개인이나 구체적인 목표를 넘어 "자유", "신", "목표" 같은 상징적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고도를 기다린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삶에서 무언가를 갈망하며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지 않을까요? 베케트는 고도의 정체를 독자들에게 명확히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각자가 자신만의 고도를 정의하도록 유도합니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단순히 이야기를 소비하는 독서를 넘어, 독자가 작품과 대화를 나누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책입니다. 삶의 부조리와 무의미 속에서도 희망과 목적을 찾으려는 우리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처음 읽을 때는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읽고 나서 곱씹을수록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이 책은 철학적 질문을 좋아하는 독자, 인간 존재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고도가 누구인지, 혹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 자체가 이 책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줍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고도를 기다리며"는 끝없이 이어지는 기다림 속에서 삶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