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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셀로 그린 심장

part 1

by 이열 Mar 14. 2025

늦여름 호수 공원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나뭇잎 사이로 보드라운 햇살이 비치고, 산들바람이 머리카락을 가볍게 흩던 시간. 그녀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인 걸 바로 알아챘지만,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다.


“책 좋아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곽현준입니다.” 이윽고 용기를 내어 건넨 말에, 시간의 흐름마저 잊은 듯 책에 빠져있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미소 지었다.

“네, 좋아해요. 안녕하세요, 송지아입니다.”

나는 괜스레 얼굴이 벌게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반갑습니다, 지아 씨.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말투가 재밌으시네요. 어떤 말씀을 들으셨을까요?”

맑은 눈망울과 따스한 목소리가 남루한 내 마음에 빛을 밝혔다. 첫 만남 이후, 나의 세계는 지아를 중심으로 공전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둘러 하나가 되고 싶었다.

우리는 일상의 사소한 기쁨에서부터 진지한 대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순간을 공유했다. 지아에게만은 나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었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 혹시 놀라고 꺼려할까 봐 두려웠지만, 결국 내 모든 걸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어렵사리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놀라는 대신, 나를 보듬어 주었다. “오빠, 힘들었겠다. 그런 비밀을 안고 사는 거.”

나는 지아의 반응에 뭉클했다. “혹시 내가 괴물처럼 느껴지진 않아?”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건 축복이야. 오빠는 언젠가 많은 사람들을 도울, 큰 일을 할 사람이라는 거지.”

그녀가 건넨 위안과 용기에 나는 전율했다. 그날 밤, 나는 지아에게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과거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녀가 내 손을 꼬옥 잡았다. 그 손길은 마치 오랜 세월 표류하던 내 삶을 붙잡아주는 구명줄 같았다.


사랑이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초능력을 남들에게 들킬까 봐 자신을 지나치게 보호하려는 성향이 있었고, 그것이 가끔 지아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오빠, 아무리 그래도 바이킹 정도는 탈 수 있잖아? 너무 몸 사리는 거 아닐까?”

“난 그저… 혹시나 잘못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런 사람이 군인인 것도 신기해, 오빠.”

“남자들이 얼마나 무신경한지 몰라서 그래. 오히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지아는 강인하고 활기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를 따라 조금씩 세상에 과감해지는 법을 익혔다.


찬란한 봄날, 함께 산책하던 벚꽃길이 떠오른다.

꽃눈이 흩날리는 공원에서 우리는 손을 맞잡고 재잘대며 걸었다.

그녀가 말했다. “오빠, 나중에 우리 아이도 벚꽃을 좋아하겠지?”

마음이 울렸지만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 아이는 분명히 너처럼 개구쟁이일 텐데… 두 사람을 어떻게 감당하지?”

내 가슴을 치며 웃는 지아의 모습을 보며, 나는 순간 그 행복이 달아날까 무서워 간절히 신께 기도드렸다. 그녀와 평생 함께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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