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불안과 사회의 책임에 대한 인문사회적 성찰
― 청년의 불안과 사회의 책임에 대한 인문사회적 성찰
우리는 흔히 “2030 세대가 희망을 잃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문장은 단순한 사회관찰이 아니라, 오늘 한국 사회가 마주한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심각한 구조적 위기를 드러내는 문장이다. 만약 내가 지금 30대 초반의 청년이라면, 한국이라는 나라를 어떤 감정으로 바라보게 될까? 기대와 미래의 가능성일까, 아니면 불안·체념·탈출의 충동일까?
나는 아마도 복합적인 감정을 느낄 것이다. 한편으로는 첨단 기술과 세계적 문화 파급력을 가진 역동적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부심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힘도 존재한다. 그것은 주거의 절망, 일자리의 불안, 기회의 감소, 미래의 책임 전가, 세대 간 사회계약 붕괴에 대한 예감이다. 청년이 느끼는 불안은 개인의 감정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현실의 결과이다.
청년이 바라본 사회의 초상화
― “살아갈 수는 있지만, 미래를 설계하기는 어렵다”
만약 내가 30대 초반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 나라에서 살아갈 순 있다. 하지만 미래를 설계하기는 어렵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생존할 수는 있으나 살아간다는 감각을 잃게 되는 공간’이다. 청년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그 경쟁이 삶의 질을 높이거나 미래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경쟁의 끝에는 보상이 아닌 더 큰 경쟁의 시작이 놓여 있다.
주택 가격은 소득 상승 속도를 압도적으로 앞지른 지 오래다. 내 집 마련은 노력의 영역이 아니라 부모 배경·자산의 영역이 되어 버렸다. 결혼과 출산은 선택이 아니라 도전이 되었고, 도전이 아니라 ‘감당 불가한 모험’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AI는 직업 지형을 흔들고, 사회보장 제도는 “너희 세대는 제대로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냉소를 불러일으킨다.
청년에게 미래는 열려 있는 가능성이 아니라 조심스러운 위험 요소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를 택한다. 순간적 행복, 작은 위로, 감당 가능한 일상의 만족을 선택한다. 그것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미래를 통제할 수 없을 때 현재에 집중한다. 그 선택은 세대의 타락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이다.
문제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 기회의 비대칭, 자산 격차, 제도의 낡음, 사회계약의 균열.
청년 문제는 결코 청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전체 사회가 스스로 만든 구조적 결과다. 몇 가지 뿌리를 짚어보자.
① 기회의 사다리 붕괴
한국은 오랫동안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사회였다. 그러나 지금 그 사다리는 사라졌다. 기회는 계층적으로 배분되고, 노력은 구조적 제약에 갇힌다. 청년들은 이 현실을 누구보다 명확히 체감한다.
② 자산 기반 사회로의 전환
부의 중심이 ‘소득’에서 ‘자산’으로 완전히 이동했다. 그리고 자산은 축적보다 ‘보유’로 가치가 증가한다. 청년이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는, 자산의 증식 속도가 노동의 가치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③ 낡은 제도가 젊은 세대에게 전가하는 부담
연금·복지·노동 제도는 과거 산업구조를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그 비용은 미래세대가 대부분 부담하게 되어 있다. 이 불균형은 결국 세대 간 신뢰의 붕괴를 불러온다.
④ 교육·노동·주거·가족 정책의 단절성
정책은 분절적이고 단기적이다. 교육과 노동, 노동과 사회보장, 주거와 가족정책 등이 서로 연결되지 않아 정책은 실제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청년의 선택이 말해 주는 것
― 결혼 포기, 출산 포기, 해외 이주, 현재 중시.
청년이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포기하는 것은 경제적 조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미래에 대한 확신의 부재 때문이다. 내일이 불투명한 사회에서 새로운 생명을 책임지는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해외 취업·이민을 고려하는 청년도 증가하고 있다. 일부는 더 큰 기회 때문이지만, 상당수는 한국의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청년들은 경쟁을 줄이고 현재를 즐기려 한다. 삶의 질을 챙기는 선택이며, 이는 오히려 건강한 인간적 반응이라고 봐야 한다.
그들의 선택은 사회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가 청년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실제적 지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한국 사회를 다시 ‘살아볼 만한 나라’로 만들기 위한 종합적 해법.
이제 한국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청년을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 시스템 전체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1) 정치에서 — 세대 간 신뢰 회복
정치의 가장 큰 책무는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계약을 다시 만드는 일이다.
● 청년의 정치적 대표성 강화
● 정책 설계 과정에서 청년 참여 제도화
● 연금·재정·복지 개혁의 투명한 공개
● 세대 간 자원 배분에 대한 공정한 합의
정치가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청년은 비로소 미래를 꿈꿀 수 있다.
(2) 경제에서 — 기회 구조의 복원
경제 정책은 ‘성장’보다 ‘기회’에 초점을 둬야 한다.
● 청년 중심의 산업 재편 및 고용 프로그램
● 재교육·전환교육(리스킬링) 국가 시스템 구축
● 중소기업·스타트업 중심 일자리 창출
● 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 보호 장치 강화
● AI 시대의 직업 안정을 위한 전환 안전망 마련
경제는 청년에게 미래의 안정과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3) 주거에서 — 불평등의 핵심 고리를 풀어라
주거 불안은 청년 불안의 핵심이다.
● 공공주택·장기임대주택 대폭 확대
● 신혼·청년 맞춤형 주거 패키지
● 토지·개발이익 환수 강화
● 전·월세 안정 장치 개선
● 청년 전용 주거비 지원 체계화
집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기반이어야 한다.
(4) 사회·문화에서 — 삶의 방식 전환
청년을 위해 사회는 새로운 문화적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 장시간 노동의 구조적 개선
● 육아·돌봄의 사회적 분담
● 일·가정 양립 문화의 제도화
● 공동체 기반의 돌봄·교육 지원
● 삶의 질 중심의 사회적 가치 확산
사회는 청년에게 “이 나라에서 살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문화적으로도 전달해야 한다.
철학적 질문 ―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
결국 이 문제는 철학적 질문으로 귀결된다.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
● 청년의 것인가?
● 기성세대의 것인가?
● 아니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의 것인가?
역사적으로 미래란 늘 다음 세대에게 열려 있어야 했다. 그것이 ‘사회’라는 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였고, 인간이 문명을 구축한 이유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미래를 열어주기보다 막아버린다. 청년들이 떠나거나 포기하거나 숨을 고르는 것은 그들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이 사회가 미래를 닫아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가 다시 이 땅에서 자신의 생을 감히 행복하게 그려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의 재설계이고, 경제의 재분배이며, 문화의 재해석이며, 철학적 가치의 재구성이다.
그렇다면, 내가 30대 초반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
―개인의 전략, 그리고 공동체적 선택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할 것이다.
● 변화할 수 있는 기술 역량에 투자하고
● 다양한 소득 구조를 만들기 위한 다능성을 키우고
● 지역과 공동체 네트워크에 참여하며
● 건강을 유지하고
● 정치적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혼자 살아남는 전략을 넘어 함께 바꿔내는 구조적 변화에 목소리를 보태는 일이다. 개인의 생존은 중요하지만, 구조의 개혁 없이는 ‘불안의 총합’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맺으며:
“희망은 이유가 아니라 결과다”
희망은 어느 날 이유 없이 솟아나는 감정이 아니다. 희망은 사회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결과다. 기회의 공정함이 보장되고, 노력의 가치가 인정되고, 삶의 기반이 안정적일 때, 젊은 세대는 자연스럽게 미래를 향해 걸어간다.
우리의 목표는 다시 질문하는 것이다. “이 나라는 젊은 세대에게 어떤 미래를 약속할 것인가?” 그 질문이 선명해질 때 비로소 사회는 방향을 되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