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빛을 두려워하는 이유
― 어둠이 빛을 두려워하는 이유
북한이라는 체제는 한 국가의 이름으로 존재하지만, 그 내부의 현실은 ‘국가’라기보다 ‘닫힌 우주’에 가깝다. 이 체제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고립을 통해 자신을 유지한다. 외부 세계와의 단절은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가 아니라, 정권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성벽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그것을 ‘고난의 체계(regime of hardship)’라 부른다.
고난은 그 사회에서 자연적 결과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다. 체제는 국민이 어려움 속에서도 지도자를 원망하지 않도록, 오히려 그 고난을 “혁명의 시험”으로 포장한다. 빈곤과 결핍은 실패가 아니라 충성이며, 그 충성은 다시 체제를 견인하는 힘이 된다. 이 안에서 김정은 정권은 기묘한 방식으로 완전성을 획득한다. 주민이 자유를 꿈꾸지 않는 한, 고난은 체제의 연료로 계속해서 태워질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권력은 두려움을 품고 있다. 특히 자유를 억압해 유지되는 권력은 자유를 늘 두려워한다. 북한의 정권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이나 첨단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단순한 것들이다. 작은 음악 파일 하나, 낡은 USB 하나, 장마당 구석에서 유통되는 남한 화장품 하나, 누군가의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질문 하나—
“정말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맞을까?”
이 질문 하나가 전체 체제의 정당성을 흔든다. 두려움은 언제나 진실을 직면할 때 생겨나는 법이다.
김정은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이재명 대통령이 해외순방 후 기내 기자간담회 대북방송 중단 관련 질의답변에서 '서로 피곤하게 방송을 왜 하느냐고 지적하면서 인터넷 찾아보면 다 나오는데'라고 하였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들이 갖고 있는 광명망은 소위 인트라넷이며 인터넷 접속은 허가받은 상위 1%도 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정권의 안정을 위해서이다.
(1) 통제되지 않는 정보 — 진실의 작은 파편이 체제를 흔든다
시골 장마당에서 몰래 팔리는 USB 하나가 체제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 안에 담긴 것은 폭탄이 아니다. 다만 서울의 거리 풍경, 평범한 가족의 일상,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고 계산하는 흔한 장면, 남한 예능의 웃음소리.
그러나 정권에게 이 몇 초의 영상은 공포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이 영상은 주민에게 한 가지 사실을 전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넓다.”
전체주의는 진실을 통제해야만 살아남는다. 북한 정권의 기반은 ‘사실’이 아니라 ‘서사’이며, 그 서사는 외부 정보가 들어오는 순간 무너진다. 그래서 그들은 총보다 USB를 더 두려워한다.
(2) 각성하는 개인 —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어떤 통치자는 국민이 똑똑해지길 원하고, 어떤 통치자는 국민이 순종하길 원한다. 북한 정권은 후자다. 그들에게 가장 위험한 주민은 뛰어나게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려는 사람”이다.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이동의 자유 — 이 모든 자유가 금지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유는 인간을 ‘개인’으로 만드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전체주의는 개인이 질문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특히 이런 질문을.
“저 지도자는 과연 무오류의 존재인가?”
김정은 체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장한 군대가 아니라 ‘주체적 인간의 탄생’이다.
(3) 엘리트의 이탈 — 권력의 균열
정권은 대중보다 내부 엘리트를 더 경계한다. 엘리트는 정보를 알고 있고, 권력의 속성을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탈출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북한은 그래서 엘리트를 감시하고, 그 가족을 인질처럼 붙잡아둔다. 사람의 충성보다 더 강한 것은 공포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안다.
그러나 두려움으로 유지되는 충성은 언젠가 반드시 균열을 일으킨다. 정권의 공포는 그 균열이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4) 시장의 힘 — 경제적 자율성의 위협
북한 주민은 국가의 배급이 아닌 시장, 즉 장마당에서 살아간다. 장마당은 단순한 경제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가격을 협상하고, 선택하고, 비교하면서 ‘자유’를 경험하는 장소다. 경제적 자율성은 정치적 자율성의 씨앗이다. 정권이 시장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5) 개방 — 체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마지막 문
북한 정권에게 개방은 ‘개혁’도 ‘변화’도 아닌 붕괴를 의미한다. 그들이 지금껏 쌓아 올린 신화·우상화·선전·왜곡의 탑은 국경선이 열리는 순간 무너져 내린다. 그들에게 개방은 빛이 아니라, 어둠을 드러내는 잔혹한 조명이다.
정권과의 교류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 개방은 기회가 아니라 ‘위험’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묻는다. “수십 년 동안 대화를 하고, 정상회담을 하고, 경제협력 프로젝트를 논의했는데 왜 북한은 변하지 않는가?”
답은 단순하다. 북한 정권에게 교류는 체제를 발전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체제를 방어하기 위한 전술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권력은 외부와의 접촉을 ‘개혁’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교류가 들어오면 즉시 그것을 통제 강화의 자원으로 전환해 버린다. 외부의 시선이 요구하는 변화—정치적 개혁, 경제적 개방, 주민의 생활 개선—은 이 체제 속에서 모두 위험 요소다.
왜냐하면 북한 정권의 국가 운영 목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국민의 삶의 질 향상, 경제 성장, 국제적 신뢰 회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최우선 목표는 단 하나, 정권의 생존이다. 그래서 교류는 늘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뒤틀린다.
첫째, 정권은 ‘개방’을 곧 ‘붕괴 위험’으로 인식한다. 외부와의 교류는 주민의 눈을 뜨이게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긴다. “왜 우리는 저렇게 살지 못하는가?” 이는 체제의 정당성을 흔드는 질문이다. 북한 정권은 바로 이 질문을 두려워한다. 교류는 외부 자원을 들여오지만 동시에 내부 각성을 불러오는 창문도 연다. 정권은 이 창문이 열리는 것을 견딜 수 없기에 교류는 항상 제한적이다.
둘째, 상호주의가 성립되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약속-보상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북한 정권에 있어 약속은 전략적 시간 벌기, 보상은 체제 연장용 보급품일 뿐이다. 이 때문에 합의는 쉽게 파기되고, 대화는 반복적으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셋째, 교류의 혜택은 주민이 아니라 정권에 귀속된다. 남한과 국제사회는 주민을 돕기 위해 물자를 보내지만 현실에서는 군, 당, 보위부가 우선적으로 그 자원을 흡수한다. 주민의 삶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생존 리스크만 줄어든다. 결국 정권과 교류하면 할수록 개선되는 것은 주민의 일상이 아니라 정권의 자기 방어 능력이다.
넷째, 권력은 “내부 변화”를 외부 압력보다 더 두려워한다. 북한 정권은 군사적 압박도 두려워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두려운 것은 주민이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즉, 위협의 본질은 탱크가 아니라 사유하는 개인의 탄생이다. 그래서 교류는 언제나 정권이 허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진행된다.
이러한 구조적 이유 때문에, 북한 정권과의 교류는 종종 큰 기대 속에 시작되지만, 끝에 가면 성과 없이 멈춰버린다. 문제가 의지나 제스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생존 논리가 교류 자체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해야 할 일: 어둠을 몰아내는 전략들
(1) 정보 유입 확대 — 진실의 바람을 불어넣기
● 단파 라디오 송출 확대
● USB·SD 카드·영상 콘텐츠 다양화
● 북중 국경을 활용한 정보 전달 채널 강화
작은 정보가 사람을 깨운다. 깨어난 사람은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복종하지 않는다.
(2) 시장 강화 지원 — 자율성의 생태계를 확장
북한 주민이 경제적으로 독립할수록 정권의 통제력은 약화된다. 시장경제는 자연스럽게 ‘생각의 자유’를 만든다.
(3) 국제사회와의 인권 공조 강화
북한이 가장 불편해하는 단어는 ‘인권’이다. 인권은 도덕적 비판이며, 국제적 압력이며, 정권이 주민에게 저지르는 만행을 조명하는 빛이다. 우리는 이 빛을 계속 비추어야 한다.
(4) 내부 엘리트 보호 — 균열을 키우는 전략
탈북 엘리트가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정권 내부에 지속적인 긴장을 만든다. 이것은 군사적 압박보다 더 강력한 전략일 수 있다.
대한민국의 성찰: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북한 정권을 바라보다 보면 거울 속의 우리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묻게 된다.
● “우리는 자유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 “우리는 통일을 국가 전략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 “우리는 북한 주민을 정치적 대상이 아니라 같은 인간, 같은 민족으로 대하고 있는가?”
북한 정권은 자유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자유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내부 갈등과 진영 싸움 속에서 자유를 ‘정파적 언어’로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북한 주민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유롭게 말하는 것,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 자유롭게 사랑하고,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누리는 것들이다.
결론 — 어둠이 빛을 두려워하는 이유
북한 정권이 두려워하는 것은 핵무기를 가진 미국도, 경제력을 가진 한국도 아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깨어난 인간”이다.
● 자유를 아는 인간,
● 진실을 본 인간,
●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한 인간.
어둠은 빛을 두려워한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빛을 더 강하게 밝히는 것, 그리고 그 빛을 정권이 아닌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다.
자유는 총보다 강하고, 진실은 어떤 독재보다 오래 산다. 그 진실과 자유가 언젠가 북한의 밤을 밝히고 이 땅의 남과 북이 같은 아침을 맞는 날이 오기를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