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케어러, 돌봄, 더 나은 사회
엄마를 극진히 보살피는 모습을 본 친척, 주변 어른들로부터 종종 듣는 말이다. 처음에는 칭찬받은 것 같아 뿌듯했다. 그리고 엄마를 돌본지 10년이 지난 지금, 씁쓸한 기분으로 돌아온다. 지금 나에게 지워진 짐은 칭찬으로 보상될 만큼 그 무게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사고가 났고 척수손상으로 인한 사지마비 진단을 받았다. ‘사지마비’ 란 단어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데, 엄마는 스스로 밥을 먹고 대소변을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누군가 매 2시간마다 체위변경을 해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24시간 내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엄마의 손과 발이 되어온 지 14년이 지났다.
엄마를 돌보면서 잦은 체위변경으로 만성적인 허리와 손목 통증 등을 신체적 어려움을 경험했고, 돌봄과 공부, 일을 병행하면서 늘 무언가에 쫓기는 삶을 살면서 심리적 피로도는 점점 누적되어 갔다. 그리고 이렇게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번아웃이 자주 왔다. ‘돌봄자 소진’은 학계에서도 인정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가족 돌봄자들의 대다수는 사회적 고립감을 경험하고 이로 인해 우울과 고독감 등 심각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 돌봄자들이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외출할 시간을 내기 어렵고 3분의 1은 돌봄자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기 힘들고 그로 인해 고립감을 느낀다고 보고했고, 돌봄자 권리 단체 케어러스 영국(Carers UK)가 2018년 실시한 조사에서 돌봄자 열 명 중 여덟 명이 외로움이나 사회적 고립감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한편, 14년이란 긴 시간을 엄마를 돌보면서도 돌봄에만 치중하지 않고 나만의 삶의 영역을 만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그중 하나는 일과 학업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절대적 돌봄 시간이 필요하고 엄마가 갑작스레 병원에 가야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지각과 조퇴, 결석이 잦아졌고 이마저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경직된 조직 분위기 속에서 내 상황이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그러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경력에 공백기를 갖게 되었고, 그러한 사회적 공백기는 취업 시장에서 불리하게 작용했다. 일을 지속하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풀타임 근무를 하는 정규직 일자리, 안정적인 일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가족 돌봄자들은 돌봄으로 인해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므로 근무 시간을 줄이거나 일을 지속한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할 가능성이 크다.
돌봄으로 인해 사회에서 도태되고 고립되지 않기 위해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 지난해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관심이 공론화되면서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서울시 복지재단을 필두로 돌봄청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 사업에 참여해서 생활비를 보조받기도 하고, 여가비를 지원받아 활용하는 등 도움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가족돌봄’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고사하고 실태조사 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돌봄자인 내가 수혜 대상이라는게 어색하면서도 내 존재가 인정받는 것 같아 위안이 되었다.
국외에서도 이미 가족 돌봄자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의 돌봄자 단체인 케어러스 유케이(Carers UK)는 심리 정서적 어려움을 경험하는 돌봄자를 위해 전문적인 심리상담과 자조모임 등 심리 정서적 지원을 제공한다. 이와같이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돌봄청년를 위한 전문적인 심리상담 지원과 지속적인 정서 지지가 필요하다. 자조모임 지원을 통해 돌봄청년 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여, 유익한 정보를 교환하고 상호 간 지지와 신뢰의 관계를 구축하도록 도와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현재 운영 중인 자조모임을 더욱 활성화하고, 돌봄청년이 반복되는 돌봄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극심한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에서 해방되고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단기휴식을 지원해야 한다.
나아가, 가족 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공백기를 경력으로 인정해주는 다양한 방안이 적극 검토되어야 한다. 그동안 가정 내 돌봄을 무급노동으로 저평가해 온 시각을 바꿔 돌봄노동을 경력으로 인정하는 의미의 경력인정서를 발급해주는 등 제도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돌봄은 강한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가족돌봄 역할을 통해 공감 능력과 문제해결력, 위기조절 능력 등이 향상되고 회복탄력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점에 주목하여 취업 시 배려하는 대안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직 가족 돌봄, 비공식 돌봄자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가 부재한 상황에서 비공식 돌봄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와 돌봄 수요를 파악하는 것은 실질적인 지원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움직임은 고립되어 있는 돌봄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아오는 시작이 될 것이다.
alookso 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