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여행기2
오울루의 첫인상은 마치 2000년대의 도시 같았다. 사람들의 옷차림이며 가게의 표지판이며 건물이며 모던함과는 거리가 멀고 2000년대 초 외국 영화를 보면 나올 것 같은 모습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길거리에서 눈에 띈 것은 고스룩을 연상케 하는 코스튬과 액세서리를 파는 코스튬 겸 피어싱 가게였다. 흥미로운 상점은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는 스스로의 권리를 상기하고 가게에 입장했다.
헤비메탈과 퇴폐미 그 어디를 추구하는 상점에서 구매한 것은 없었지만 오울루는 단숨에 흥미로운 곳이 되었다. 가게를 나와 길거리 게시판에 붙어있는 홍보 포스터를 보았다.
오울루 프라이드 축제, 즉 성소수자 축제가 오울루에 머무르는 동안 열린다는 굿뉴스를 발견했다. 평소 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많고 진보적인 북유럽에서 열리는 프라이드 축제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인스타그램에서 축제 계정을 팔로우하고 날짜와 시간, 장소를 메모해놓았다.
예약한 에어비앤비가 시내와는 떨어져 있어 짐이라고 해봤자 배낭밖에 없는 백패커는 2개월 여행 분량의 짐을 들고 시내 구경을 했다. 화장실이 급해 찾은 쇼핑센터에서 노르말(Normal)이라는 우리나라의 다이소와 같은 상점을 마주했다.
노르말은 덴마크 브랜드로 덴마크와 스웨덴, 핀란드에서 쉽게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 아저씨 캐릭터가 인상적여서 기억에 남았다.
핀란드는 자국 통화가 있는 덴마크와 스웨덴과 다르게 유로를 사용하는 국가로 오랜만에 보는 유로가 반가웠다. 꽤나 저렴했고 별거별거 다 팔았다. 비누부터 면도기, 로레알 화장품, 젤리 등 온갖 생필품에 이어 Inivisible butt lift (엉뽕), fake nipples (가짜 유두) 등 난생처음 보는 물건들에 눈이 갔다.
플라잉타이거(Flying tiger)라고 한국에도 들어온 덴마크의 잡화점 있는데 어이없게 웃긴, 근데 귀여운 물건들을 판다. 노르말은 가격이 좀 더 저렴한 플라잉타이거 같았다. 분위기도 다이소보다는 플라잉타이거 느낌, 가격과 상품의 다양성에서 다이소 같은 그런 곳이었다.
북유럽에 가신다면 노르말에 꼭 한 번은 방문해보시길. 시간이 정말 금방 간다. 쓸데없는 물건들로 장바구니가 채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아빠 선물로 부엉이 눈이 그려진 안대를 샀다. 이 안대를 쓰면 부엉이가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자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다.
쇼핑센터에서 나와 뮤직 페스티벌이 열리는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역시 늪지대의 나라인 핀란드답게 호수과 늪지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뮤직 페스티벌은 공원 한복판에 작은 간이 무대를 설치하여 공연을 진행했다.
오울루의 뮤직 페스티벌은 내가 생각한 일반적인 뮤직이 아니었다. 메탈 같기도 하고 락 같기도 하고 타령 같기도 하고 갑자기 처음 보는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고스룩에 이어 괴기한 느낌이 드는 공연이었다.
스웨덴 스카이데 축제에서 목소리와 주변 사물을 이용해 소리를 만들고 이를 녹음하여 음악을 켜켜이 쌓아나갔던 메리가 핀란드 출신이라는 것이 떠오르면서 핀란드는 독특한 사운드를 활용한 음악이 발달한 나라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한국이었다면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절대로 허가하지 않았을 법한 장르의 음악 축제였다. 공연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흥미로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비가 내렸는데 나도 사람들도 우산을 쓰고 공연을 봤다. 잔디밭 위에 재킷을 깔고 그 위에 앉아 공연을 감상하는 핀란드 사람들은 어쩌면 비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기도 하다.
오울루는 인구로 봤을 때 핀란드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도착한 지 3시간 만에 굉장히 흥미로운 곳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스톡홀름이나 코펜하겐은 도착하자마자 모던하고 약간은 콧대 높은 도시라는 느낌이 왜인지 모르게 들었는데 오울루는 이와 대조적이게 트렌디하지 않고 미묘하게 옛날 느낌이 나는 그런 도시였다. 그래서 더 재밌고 정이 갔다.
또 도시에서 아시아인을 거의 볼 수가 없었고 사람들이 아시아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대놓고 볼 수는 없고 나를 곁눈질로 보는 게 느껴졌다. 그런 시선이 기분 나쁘기보다는 오히려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아 그들의 관심을 즐겼다.
사람들도 그렇고 도시가 뭐랄까 제3세계의 큰 도시에 온 느낌이었다. 예상했던 핀란드의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짧은 시내 구경을 마치고 에어비앤비로 가기 위해 마을 버스를 탔다.
핀란드는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버스 정류장이 엄청나게 많은데 모든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추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정류장에서 사람이 기다리고 있거나 누군가가 하차벨을 눌렀을 때만 버스가 멈춘다.
심지어는 버스 안에 안내방송이 없어서 하차벨을 누르지 않으면 택시처럼 쭈우우욱 간다.
나 같은 여행객은 구글맵을 항상 손에 쥐고 있어야 했다. 내려야 하는 역의 전역을 지나면 바로 하차벨을 눌러야 목적지를 지나치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다.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는 무척이나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