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물속에

by 프프

창문을 두드리던 물방울이

홍수가 되어 집을 삼킨다.

산은 몸을 풀고

나무와 흙을 우르르 쏟아내며

집을 산 아래로 떠민다.

바닥이 바다가 된다.


냉장고가 떠내려간다.

얼음 조각처럼 갇혀 있던 시간이

물살에 녹아 흘러간다.


자동차가 떠내려간다.

바퀴는 더 이상 돌지 못하고

어디로든 흘러가고 있다.


앨범이 떠내려간다.

사진 속 웃고 있던 얼굴들이

조용히 지워진다.

어린 시절의 생일 케이크

흙탕물에 스며들며

초도, 불빛도 사라진다.


모든 것이 떠내려간다.

기억의 경계선마저 홍수에 잠겨

흐릿하게 무너져 내린다.

나는 넋을 놓고

힘껏 성난 물결을 바라본다.


119 구급대원의 손이

우리를 한 명씩 끌어올리고

저녁 뉴스가 시작된다.

TV 속 화면이 비추는 건

흙탕물에 떠밀려가던 냉장고,

방향을 잃고 기우뚱하던 차,

널브러진 어린 시절의 추억,

내가 살던 집이다.


비는 멈춰도

나는 여전히

떠내려간 것들을 헤아리며

물속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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