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못러에서 벗어나기
기획팀에서 근무하는 한 대리는 부문 예산 담당자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부문에서 사용할 예산을 정리하여 재무회계팀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매 달마다 각 팀 예산 담당자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깎을 예산은 과감하게 쳐내고, 추가할 예산은 살을 붙여서 제출해야 하기에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예산 총액은 한정되어 있기에 각 팀마다 한 푼이라도 더 예산을 확보하려고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지고는 한다.
마라톤 회의 끝에 확정된 예산을 회계팀에 제출하려고 파일을 찾았다. 그런데.. 그 파일이 보이질 않는다. 도대체 어디 간 것일까?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폴더를 샅샅이 다 뒤졌지만 보이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IT 헬프데스크에 연락했지만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을 뿐이다.
금액 확정하느라 한 시간 넘게 부문 담당자들 다 모여서 회의했는데.. 설마 다시 모여서 회의해야 하나? 그런데 제출 마감기한은 오늘까지이다. 한 대리는 순간 사무실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 대리 이야기는 사실 내 스토리이다. 결국 회계팀에 하루만 더 시간을 달라고 양해를 구한 뒤, 각 팀 담당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기억을 되살려 회의 때 금액을 다시 알려달라고 사정해야만 했다. 내일 휴가인데, 출장인데 온갖 볼멘소리가 튀어나왔고 심지어 그 팀 팀장에게 항의가 들어간 뒤, 그 팀장은 내가 속한 팀 팀장에게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파일 저장만 잘했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저장 제대로 안 하는 바람에 반나절을 이 업무에 써야만 했다. 다른 팀 팀원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고 말았다. 그 후폭풍이 엄청나기만 했다. 이처럼 컴퓨터 파일 저장을 잘하는 것은 업무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야구에서 홈런을 치고도 홈 베이스를 밟지 않는 바람에 득점이 취소되고 아웃 처리되는 해프닝이 드물게 발생한다. 파일 저장을 안 하는 것도 이와 같다. 끝내주는 보고서를 만들었음에도 저장을 안 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린다.
요즘은 주기적으로 파일을 자동 저장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회사들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회사들은 작성자가 직접 저장해야만 한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저장하는 것을 잊은 채 업무에 몰두할 때가 있다. 이때 갑자기 컴퓨터가 다운되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멘붕이 오게 된다. 저장을 안 했기에 실컷 작업했던 내용이 싹 다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입에 거품 물고 쓰러질 판이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칸막이 문고리 잠그듯이, 파일 저장도 습관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어 있으면 이런 낭패를 보게 된다.
상대방이 이메일로 파일을 보낸 경우, 곧바로 그 파일에다가 작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 생각 없이 이 파일을 그냥 저장했을 경우 당연히 엉뚱한 곳에 저장된다.
예를 들어 내 폴더에 '25년 상반기 경기 남부권 서빙 로봇 판매실적' 엑설 파일이 저장되어 있다고 하자. 옆 부서 담당자가 업데이트된 사항이 있다고 하면서 수정된 내역을 '25년 상반기 경기 남부권 서빙 로봇 판매실적(vol.2)'로 보냈다고 하자.
그런데 이걸 제대로 폴더에 저장하지 않고 받은 vol.2 파일에 이어서 작업하고 그냥 저장해 버리면 도저히 찾을 길이 없게 된다. 물론 없어진 것은 아니다. 임시 파일 저장하는 폴더 어딘가에 있다. 그러나 급하게 파일이 필요할 때 찾기가 힘들어지게 되고 파일 찾아 삼만리를 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서 찾으려고 할 경우는 더 심각해진다. 도대체 어떤 파일이 가장 최신 파일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이러면 업데이트 안 된 파일을 최종본으로 오해하게 될 수도 있다.
일 년 간 한 번도 치우지 않은 돼지우리 간 같은 집을 상상해 보라. 입고 싶은 옷은 어디에 있고, 예전 여행 때 사 온 선물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길이 없게 된다.
컴퓨터 폴더 역시 마찬가지이다. 파일명은 아무렇게나 지어져 있고 여기저기 대충 파일을 저장해 놓으면 내가 도대체 어떤 파일로 작업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이 경우 저장을 했음에도 그 파일이 어데어 있는지 위치를 몰라 당황하게 된다.
파일 저장은 단순히 저장 버튼만 잘 누르면 되는 일이 아니다. 파일 관리가 철저하게 되어야 하는 일이다. 저장 버튼을 눌렀음에도 그 파일이 도대체 어디 숨어 있는 건지 모르고 있거나, 최신 파일 아닌 것을 최종본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그건 저장 안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제일 기본이다. 잘 때 추우면 무의식 중에라도 이불을 끌어당겨 덮듯이, 저장 버튼을 수시로 누르는 습관을 갖자. 소주 두 병 마신 뒤 사무실에 복귀하여 다시 일을 하더라도 (물론 이러지는 말자) 저장은 자동으로 누르도록 습관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저장 자주 해서 손해 볼 것은 전혀 없다. 꺼진 불을 자주 보면 볼수록 화재 예방이 되는 것과 같다.
원본 파일에 작업을 해야 한다. 원본 파일이라 함은 가장 최신자료가 들어있는 근본이 되는 파일을 의미한다. 상대방이 보낸 자료는 그저 남이 보낸 자료이지, 근본 파일이 될 수 없다. 이런 자료는 히스토리 관리를 위해 '타 팀 회신 파일' 폴더에 넣어두고 필요한 부분만 추출해서 쓰면 된다. 받은 파일에 이어서 작업하면 안 된다.
그래서 폴더 안에는 원본 파일 딱 하나만 보이게 두어야 한다. 다른 잡 파일들은 하위 폴더에 싹 다 집어넣자. 현재 애인 하나만 보여야지, 과거 사귀었던 연인들이 동등한 레벨에 같이 머물고 있으면 안 된다. 추억 속의 그 연인들은 싹 다 하위 폴더에 집어넣어 눈에 안 띄게 하자.
폴더를 뒤죽박죽 관리하게 되면 이 파일이 어디에 들어있는지 확인이 어렵다. 만약 '대리점 별 판매실적' 폴더를 만들었는데 그 안에 조직활동비, 인건비 파일이 들어가 있다면 혼란이 일어나게 된다.
조직활동비, 인건비도 비용이기에 왠지 판매실적에 끼워서 같이 관리하면 좋은 것 같지만, 이렇게 되면 혼란이 생기게 된다. 판매실적은 수익과 관련된 것이고 조직활동비, 인건비는 비용이기에 둘은 아예 범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폴더명을 제대로 지정하고 그 위치에 맞게 저장해야 서로 범주가 다른 파일이 섞이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실컷 작업한 파일을 저장하지 않아서 날려 먹거나, 원본파일 놔두고 엉뚱한 파일에 작업하고 저장까지 하는 바람에 파일이 뒤섞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파일 관리는 업무의 기본이다. 저장을 잘해야 이런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파일명은 정확한 이름으로 저장하자. 그리고 폴더 이름에 맞는 파일이 정확하게 저장되어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 급하고 귀찮다고 이걸 대충 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늘 주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