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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사진

아직도 배운다- 글쓰기 동아리 '액자'

by Goldlee

매일 보는 것과 가끔 보게 되는 것 중에서 보려고 보는 것과 보려고 생각하지 않아도 보게 되는 것들. 액자. 언제부터 걸려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액자. 그 속에 들어 있는 사진. 그리고 빈칸. 사라진 사진. 기억나지 않는 그 시간. 왜 기억나지 않을까?

글을 쓰다가 검은 테두리의 노트북과 모니터에 쌓인 먼지가 보인다. 정전기포로 먼지를 닦는다. 그냥 버리기 아까워 뭔가 닦을 것들을 찾아본다. 그때서야 나타나는 액자들이 있다. 검은 테두리의 다섯 칸이 연결되어 있다. 다섯 장의 사진 중 두 번째 칸이 비어 있는 걸 알았을 때가 벌써 몇 년 전이다. 먼지를 닦을 때마다 그 액자의 빈칸에 있었던 사진을 기억해 내려고 한다.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을 지워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닦아도 남아 있는 먼지처럼 남아있는 기억을 되살리고 싶다. 잠시 생각하지만 떠오르지 않아 먼지를 닦던 행동도 잊고 다른 걸 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걸 왜 하지?'라는 생각에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다.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보고 나서야 네 번째 칸이 비었다고 생각하고 그 옆에 이어져 있던 사진들을 본다. 액자의 빈칸과 이어진 사진. 갇혀버린 기억이 되어 어딘가에 버려졌을 사진을 찾아야 한다.

이윤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액자 속 사진의 주인공은 첫째 이윤이다. 태어난 날 손가락과 발가락을 세어 보라는 간호사의 말에 작은 얼굴만을 보고 있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빠를 보며 입을 삐죽하며 웃었다. 이렇게 말해도 갓난아기가 어떻게 웃냐며 믿지 않겠지만 16년째 말한다. 내 기억 속에 나의 첫째 딸 이윤이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때 그 짧은 시간에 사진을 찍지 않고 눈에만 담아 둔 게 아쉬웠던지 며칠 뒤 DSLR카메라를 샀다. 초소형 카메라가 한창 유행이었지만 디지털카메라에 담긴 추억은 왠지 오래가지 않을 것 같아 잘 알지도 못하는 DSLR카메라를 산 것이다. 막 찍어도 현상해서 앨범과 액자에 넣는 재미가 있었다. 그 수많은 사진들은 앨범에 들어가 간직되어지고 있다. 그중 '처음'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사진이 액자 속에 들어가 보이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 보이고 싶었던 걸까?

두 번째 인가? 네 번째 인가? 빈칸의 순서가 중요한가?

자전거 타는 방법을 처음으로 가르쳐 주던 날. 안절부절 손을 떼지 못하고 뛰어가던 내 모습을 딸은 보지 못했으리라.

"정면, 그러니까 앞을 항상 주시해야 아니 보고 있어야 해! 항상 전방주시 아니 앞을 보고 신경 써야 해! 알겠지?"

강정보 광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이윤이의 자전거 귀를 잡고 달리던 그때. 보조바퀴를 달고나서 손을 놓아주었다. 신나서 달리던 이윤이의 그 표정을 처음으로 찍은 사진이 빈칸 옆에 있다.

"잠깐만 뒤 돌아봐 봐."

"늦었는데."

귀찮은 듯 고개만 살짝 돌린 얼굴이 긴 머리카락에 가려 반쯤 들어 난 사진. 벌써 다 자란 것 같아 아쉽기만 한 사진. 중학교 입학할 때 현관문을 나서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또 다른 옆에 있다. 마지막 사진을 보고 기억을 더듬어 본다.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되뇌지만 자꾸 순서를 매긴다. 빈칸의 사진은 언제 찍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똑같은 액자가 하나 더 있다. 동생인 이우의 사진이 들어가 있다. 이 사진들도 처음의 설렘과 기쁨이 들어있다.

"오렌지가 될래요."

어린이 집에서 친구에게 손을 깨물려서 왔던 날. 오렌지가 진짜 되어 버려서 물렸을지도 모를 그 사진을 보고 떠오른 한 장의 사진.

'가수가 될래요.'

화원 유원지 앞에서 소원을 적었다. 간절히 적고 있는 딸을 찍었던 사진. 누가 볼까? 꿈이 사라질까 봐 손으로 가려가며 적던 고개 숙인 그 뒷모습을 찍은 사진. 꿈을 꾸던 소녀들의 사진을 걸어 뒀을 테니 이 사진이 사라진 것으로 추측을 해본다. 어디로 간 것일까? 어쩌면 꿈을 찾아간 것일까 싶다.

보려고 하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것들. '문득', '불현듯'이란 단어처럼 떠오르는 기억들. 애써 기억해 내려해도 나지 않는 시간들. 고개만 들면 볼 수 있지만 보지 않았던 액자를 보고 나서 액자의 빈칸을 보려고 한다. 보고 싶지 않아서 보지 않았던 게 아니다.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사라진 것이다. 내 기억도 마찬가지도 기억해 내고 싶지 않아서 지워진 것이다. 하지만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운다고 해서 압흔마저 사라지진 않는 것이다. 추억들은 압흔처럼 남아있다. 꿈을 찾아 나간 사진의 얼룩진 테두리를 한참을 응시한다.

표지- 두딸들-이윤이우-바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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