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배운다- 글쓰기 동아리 '택시'
스무 살이 지난 어떤 여름.
호텔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먹으라며 손짓하는 MJ를 보라며 같이 간 친구가 등을 쳤다.
"왜? 저래."
통유리로 안쪽에서 유니폼을 입고 폴짝폴짝 뛰며 들어오라며 손짓하는 MJ.
"네? 뭐라고요?"
큰소리로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 답답했는지 문을 반쯤 열고 허리까지만 밖으로 내밀고는 말한다.
"피자 먹어요."
눈이 동그레진 나와 친구는 수영장 청소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젖은 반바지차림으로 호텔 레스토랑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 왜 이리 얇아요."
"씬피자니깐요."
뭔 말이지. 나는 그때까지 피자를 한번 먹어 봤다. 형이 데리고 나간 동성로에서 피자를 먹었는데 두꺼웠던 기억이 있었다. 날씬한 피자가 왜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날씬한 MJ가 그렇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먹었다.
단발머리에 까만 피부, 날씬한 몸매, 짧은 치마. 어릴 때 봤던 만화 '나디아'에 나온 나디아 같았다. 첫눈에 반했다. '아! 내 사랑이 여기 또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그전에 있던 나의 첫사랑은 안녕이 되고 말았다.
"호텔 실습을 정식으로 할래? 수영장에서 아이스크림 팔래?"
뭔 소리지. 멀뚱멀뚱 쳐다본다. 친구랑 서로 마주 보며 눈으로 물어보고 대답한다. '수영장에서 수영 맘대로 할 수 있는 건가? 비키니 많겠지? 아이스크림 공짠가?'라는 눈빛 대화 중에 한번 더 물어 봐 주시는 대리님의 말에 우리는 당연합니다라고 외쳤다.
"수영장에서 아르바이트하면 시간당 1500원을 주께."
눈이 더 커지고 눈알이 한 바퀴 돌며 오른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누굴 바보로 아는 건가? 당연히 수영장 알바를 해야지.
"대신, 실습평가서는 한 걸로 작성해 주셔야 됩니다."
"당연하지."
우리는 그렇게 덤 앤 더머처럼 실습하러 와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수영장청소부터 아이스크림 기계 청소 핫도그, 핫바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직접 팔았고 떡볶이부터 피자 등등 화기가 필요한 건 레스토랑에 연락해서 배달을 시켰다. 비키니 입은 여자는 보이지 않았고 하루 종일 아이스크림 기계에서 아이스크림을 내렸다. 왜 애들은 지가 흘려놓고 나한테 와서 뭐라고 하는지 왜 그 엄마들은 나한테 화를 내는지 귀찮기만 할 뿐이었다. 그럴 때면 세상에서 가장 긴 아이스크림 탑을 쌓아 주고 통유리로 보고 있을 것만 같은 대리님이 봤을까 싶어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MJ와 눈이 마주쳤다. 들켜서 놀랜 척 고개를 돌리고 다시 보고 웃었다. MJ도 그 큰 입을 활짝 벌려 같이 웃었다.
왜! 저녁에도 일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통기타 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맥주 한잔 준다는 말에 우리는 하기로 했다. 덤 앤 더머인증도 한 셈이다. 통기타 가수의 노래가 끝나고 텅 빈 무대 위에 노래방기기를 가져다 놓고 맘대로 노래하라고 권한다. 아무도 나오는 사람이 없으니 우리 보고 흥을 돋우라고 먼저 한곡씩 하라고 한다. '아! 노래까지 할 수 있다니. 여긴 놀면서 돈 버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에 오백짜리 맥주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마셔버리고 무대로 올라갔다. '여름이야기'부터 시작해서 'DOC와 춤을'을 미친놈처럼 불렀더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사실 고상한 통기타 가수의 노래도 보다도 이런 스트레스 날리는 노래가 필요했었나 싶더라. 박수를 받으며 내려가니 맥주가 채워지고 몇 분의 용기로 노래가 이어지는 듯하다가 정적이 흐를 때쯤 우리 보고 또 올라가라고 한다. 친구가 싫다고 해서 혼자 올라가서 락발라드 몇 곡 불렀다. 옷의 칼라를 바짝 세우고 '멀어져 간 사람아'를 부르고 있을 때 내 눈에 띈 MJ. 근무시간 끝나서 청바지에 흰 티셔츠만 입고 있던 MJ. 내 눈에는 MJ만 보였다. 노래가 끝나고 앙코르?을 받으며 내려온 나는 MJ에게 말했다.
"어! 왔나."
멋있는 말을 해야지 왔나 가 뭐고 왔나 가. 대답도 듣기 전 자리로 돌아가서 앉으니 친구가 마치고 경주시내 가서 술 한잔 하자고 한다. MJ도 온다고 한다. 뛸 듯이 기쁜 게 아니라 뛰고 있었다. 몸이 주체를 못 해 말보다 먼저 앞서던 여름이었던 것이다.
기숙사로 쓰던 방에 MJ와 둘만 남겨진 채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기억에 남는 건 창문밖으로 보이는 산 위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는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두 달이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간 건지. 두 달 만에 대구에 있는 집으로 갔다. 집이 어색하고 꿈속을 아직도 헤매는 듯 온통 MJ가 있는 경주생각뿐이었다. 개강하고 방학 동안 서로 안부를 물으며 술자리까지 이어진 그날. 나는 '멀어져 간 사람아'를 부르고 있을 때 보였던 MJ만 생각나고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 나는 벌떡 일어났고 도로가로 향해 외쳤다.
"택시!"
들리지도 않을 소리가 전해진 건가. 통유리 저편에 있던 MJ의 손짓처럼 나도 폴짝폴짝 뛰며 외치고 있었다. 멈춰 선 택시의 문을 열고 한쪽 발을 집어넣으면 물었다.
"거기. 그때 그 여름으로 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