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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평화

아직도 배운다- 글쓰기 동아리 '평화'

by Goldlee

완도대대에 초소를 새로 짓는데 공사감독병으로 있던 한병장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대로 복귀했다. 아침 점호 후 일과 편성을 하는 중에 소대장의 능구렁이 같은 목소리가 상병이하 병들에게 솔깃하게 감겨왔다.

"한병장 대타로 나가야 하는 데 가고 싶은 사람 손 들어봐라."

병장들은 아저씨 취급받으며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하는 타부대 생활보다는 간부들 눈에만 안 띄면 왕처럼 군림할 수 있는 자대를 떠나고 싶지 않을 테니 관심이 없었고 갓 들어온 신병은 개념 없이 손을 들 수 없고 일병들은 나가고 싶지만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나는 눈치를 보지 않았다. 상병을 갓 달았고 선임들의 따가운 시선 따윈 관심 없었다. 나가고 싶었다. 3개월째 잔디만 뽑고 심고 했으니 어디로든 가고 싶었다.

"제가 가도 되겠습니까?"

"넌 뭐냐? 넌 건축, 토목과는 전혀 상관없잖아."

"네, 그렇지만 1년 동안 행정병으로 있으면서 공사계 업무를 도왔던 적도 있고 대타로 보내신다면 급하게 보내셔야 하는데 저는 지금 특별히 맡은 작업이 없어서 바로 투입 가능할 것 같아 지원했습니다."

3개월 전 행정병이었던 나는 그만둬야 했다. 내 일기를 읽은 행정보급관이 중대장에게 보고했고 그 이후 나는 행정병을 그만둬야 했다. 중대장은 입술이 오므리며 움츠러드는 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네가 쓴 일기 중에 비 오는 날에도 빗질을 하는 일본사람의 이야기는 왜 쓴 거야?"

"얼마 전 읽었던 책에 나온 내용을 생각나서 쓴 것뿐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을 빗대어 행정반 내에 있는 간부들이 한심해 보였던 건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평소에도 불만이 많은 표정이던데 행정반에 계속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넌 그만 행정병 그만두고 대기하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난 그 뒤로 부대 주변의 잔디를 깎고 뽑고 심고 다듭었다. 석 달을 하고 나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고문이나 다름없었다고 생각했다. 창살 없는 감옥. 행정반에서 사상이 이상해 잘린 놈으로 낙인찍혀 타 중대 간부들도 점호시간에도 아닌 시간에도 꼭 한 번쯤 참견을 했다. 트집 잡히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한다고 해도 나는 언제나 한마디 듣거나 한 대 맞고 넘어갔다. 전투화에 광이 나지 않는다고 맞고 모포에 각이 안 잡혀 엎드려 뻗쳐야 했고 전투모가 많이 휘었다고 머리를 쥐어 박혔다. 수시로 내 총기를 건드려 나로 하여금 총번을 말하게 하는 건 기본이었다. 나는 지쳐갔고 내 의지는 꺾여버렸다. '잘못했습니다.'를 수시로 내뱉었고 나는 잘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를 그렇게 바라보며 나를 모르던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대장의 말이 나왔을 때 내가 갈 곳이라고 생각했다. 소대장이 잠깐 나갔다 와서는 나보고 짐을 싸라고 한다. 혹시라도 바뀔까 봐 부리나케 짐을 싸고 최고참에게 신고하고 나와버렸다. 중대장에게 신고를 하고 소대장과 함께 수송중대로 가서 다찌를 배정받고 나서 사이드 미러에 비친 웃고 있을 나를 볼 수 있었다.

다찌 적재함에 호루도 씌워져 있지 않아 몇 시간을 땡볕에 실려 가고 있었지만 덜컹거릴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이며 날아가는 듯 기분이 좋았으며 다시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광주 시내로 들어서면 적재함에 실려 있는 동물 보듯 보는 사람들의 시선들이 부담스러웠지만 내 눈은 피하지 않았다. 나도 그들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만 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세계에 나왔으니 모든 걸 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내도 지나고 시외를 몇 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넌 어차피 대타니까. 자리만 지켜. 물어보면 보고하고 나서 알려준다고 하고 자재파악이나 해 놓고 있어."

소대장의 말에 현장소장님이 움찔하며 나를 쳐다본다.

"이상병이라고 했던가? 잘 부탁해요."

"네, 알겠습니다."

어른이었기에 씩씩하게 대답했을 뿐인데 소대장이 눈치를 준다. '군인도 아닌데 왜 복종하듯 말하지 마라.'는 것 같았다.

소대장도 대학졸업 못한 학생인데 어른을 대하는 태도가 어른처럼 보이려는 어른 같았다. 사회생활을 해 본 적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책임과 권한이 생긴 소대장은 어른이 돼야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그에 비해 어린애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책임도 권한도 없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소개를 하고 떠난 소대장을 배웅하고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멍하게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들락거리는 공사인부 아저씨들의 인사를 받고 인사를 하며 어두워질 때 완도부대로 복귀했다. 현장소장님의 자동차로 편하게 들어오는 나를 위병소 근무자들은 어이없이 쳐다보며 내 계급장을 보고는 놀랍다는 눈을 치켜떴다. 리아스식 계단구조가 연상되는 내무반 건물에 짐을 풀고 나는 낯선 곳에서 밤을 보냈다. 구석에 없는 사람 취급을 받으며 잠든 첫날밤. 온돌바닥의 뜨거움이 나를 계속 뒤척이게 했고 바다 바람은 차가움은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래도 불침번은 서지 않아도 되니 그것만으로도 잠잘 수 있는 시간은 넘치고 남음이었다.

푹 자고 일어난 아침. 점호 시간에 엉기적 너희적 거리며 나가기도 처음이고 아침 구보도 생략하고 아침을 맞이했다. 그리고 현장소장님이 왔다는 소식에 현장으로 출근했고 나는 오전 내내 뭘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앉아 았기만 했다. 전화 한 통이 왔다.

"통신보안. 완도대대 OO초소 현장 이 OO상병입니다."

"잘하고 있어? 졸지 말고 잘 감시하고 있어라."

행보관(행정보급관)의 전화 속 목소리에 움찔하며 아마 어딘가에서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아 창문을 한번 살펴보기까지 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줄자와 연습장을 들고나갔다. 그렇게 한 달 정도 매일매일 철근의 지름부터 동강 난 조각까지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자재들의 길이와 두께를 적고 수량을 적었다. 자재가 들어온 날이면 차량 옆에 서서 보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했을 때 현장소장님이 나를 불러 말했다.

"어이, 이상병 뭐 하는 거야? 뭘 그렇게 적고 다녀."

"아뇨. 할 일 없어서 그냥 자재파악 하려고요."

"자재파악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 왜 누가 하래."

"아뇨. 그냥 하는 겁니다."

일주일이 지났다.

"이상병, 이제 함바집에서 밥 먹는 거 그만 먹어. 군인이 부대에서 밥을 먹어야지."

"네? 점심시간에 다시 내려가려면 시간 걸려서 여기서 먹으라고 하셨잖아요."

"함바집 사장님이 밥값 안 주면 안 된다 해서. 라면도 막 먹고 그러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여기 함바집에 인부들하고 같이 밥도 먹고 간식도 먹고 그러면 된다고 둘째 날부터 자상하게 챙겨주시던 현장소장님은 사라졌다. 보름이 지난날부터는 출퇴근을 걸어서 하라고 한다. 군인이 차 타고 다니면 되냐고 걸어서 오라고 한다. 해수욕장 옆에 있던 초소를 산 꼭대기로 옮기는 공사현장이었다. 대략 걸어서 1시간이 더 걸렸다. 나는 알겠다고 했고 나는 매일매일 하던 나만의 자재파악은 멈추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 소대장이 왔다. 그리고 내 연습장을 보고 중대장에게 보고가 되었고 나는 정식 감독병이 되었다.


퇴근하며 산길을 걷던 나보고 차를 타라고 하던 현장소장님은 초소에 말해 줄 테니 먹고 싶은 거 있냐고 묻는다. 웃음이 나서 그냥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같이 타고 내려가던 아저씨들이 부추긴다.

"이상병 오늘 삼겹살 한번 먹고 싶다 해라."

"아! 네. 그러까요."

"삼겹살 먹으러 가입 시다."

"그래 오랜만에 회식하자."

"이상병도 한식구니깐 같이 가자."

마셔도 될지 모를 소주를 한잔 받아 마시고 콜라를 세병은 마신 것 같다. 삼겹살 배물리 먹고 나니 노래방에 가자고 한다. 나는 그래도 되는지 주변을 살폈지만 어두침침하고 눅눅한 곰팡이가 어딘가에 피고 있을 지하노래방에서 신곡을 찾으려 비닐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여긴 이런 곳인 거야. 권력자만이 누리는 세상인 거야.'어두침침한 그 방에서 돌아가는 불빛에 비친 현장소장님의 눈은 살아온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따라 주는 맥주 거품이 넘쳐흘러서 내 가면을 씻어내는 것 같았다.


다음날부터였을 게다. 나는 다시 자동차로 출퇴근시켜 주겠다는 현장소장님의 말을 끝내 거부하고 걸어서 다녔다. 육개장김치사발면과 함바집 점심은 다시 먹었다. 자재파악은 하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길을 걸었다. 그리고 혼자였다. 해수욕장 끝에 자리 잡고 있던 초소를 나와 몽돌에 부딪히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해수욕장을 걷다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소나무 숲길을 지나고 산으로 이어지는 그 길을 한참 오르고 나면 새로 짓는 초소가 나온다. 나는 그 길을 걸을 때 혼자였다.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고 나도 관여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가 가장 평화로운 시기라고 생각한다. 군대가 상징하는 통제와 명령이 사라졌다. 군생활을 하면서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권력자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들에게 믿음을 얻어 냈고 가혹하리만치 그 대가를 치르게 했다. 평화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나의 평화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정도리 해수욕장. 구계등. 산호초모텔. 재즈가수 웅산. 나의 평화로운 그때가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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