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배운다- 글쓰기 동아리 '날다'
"칠십삼 킬로그램"
"안됩니다. 저는 꼭 가고 싶습니다."
"그럼 삼 킬로그램을 더 빼고 오세요. 내년에 다시 도전하세요."
주말마다 술을 마시고 콜라로 입안을 씻어냈고 삼겹살과 해장국으로 배를 채웠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토요일 마신 술이 깨면 일요일 오후부터 계속 먹고 싶어진다. 배가 부른 상태지만 또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평소에 먹지도 않던 라면을 쿠팡에서 한 박스 결재했다. 그리고 배달의 민족을 끄적이며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을 후라이드와 양념을 주문해서 먹었다. 군 생활 중에서도 훈련병 때나 먹던 초코파이가 먹고 싶어 쿠팡에서 할인하길래 네 박스나 주문해서 밥 먹고 나면 우유와 함께 두 개씩 먹었다. 3주 정도 이렇게 먹으니 4킬로그램이 늘어났다. 67킬로그램이 목표였다. 그런데 거울을 보면 볼수록 내 눈밑이 파여 쪼그라든 내 얼굴을 볼 때마다 그만두고 싶었다. 그래서 몇 달을 참고 운동해서 뺀 살을 한 달도 안 되어 다시 찌우고 있는 것이다. 날 수 있는 67킬로를 맞추기 직전 나는 포기한 것이다. 날고 싶지 않은 건가?
제대 후 몇 달째 환영받겠다는 명목하에 술을 얻어먹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새벽 4시. 건너기만 하면 집이 보이는 데 그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했다. 나에게 오는 그것 때문에 나는 건널 수 없었다. 무서웠다. 나를 날려버린 자동차보다 더 무서웠다. 날고 있는 나와 그런 나를 보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 그날이 무서웠다.
왼쪽 팔을 접어 어깨에 붙였다. 그리고 팔뚝에 힘을 주고 살짝 앞으로 내밀며 막아내려고 했다.
"끼익, 쾅."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 몸은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하늘 높이 오르지 못한 나를 볼 수 있었다. 높이 뛰기 하는 육상선수처럼 나는 무언가를 넘으려고 몸을 띄워 허리를 하늘로 더 밀어 올리고 있었다. 아주 느리게 솟구쳐지고 있었다. 떠오르는 건 내 몸만이 아니었다. 기억도 떠오르고 있었다.
"어디 가는 데?" 아빠가 물었다.
"아빠! 저기 가려고." 어린 내가 대답했다.
길에서 만난 아빠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 말지 눈만 동그랗게 뜬 상태로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 아빠를 낮에 길에서 본 건 처음이었고 그 길도 처음 가는 길이었다. 혼자 가는 길에 마주친 아빠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말았다.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뒤 돌아보지 않고 계속 가려고 했다. 하지만 헤매기고 있는 내 뒷모습이 보였다. 내가 가려고 했던 그곳은 혼자서 갈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항상 처음 가는 길이었다. 흐릿해진 기억은 완전한 어둠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다시 나를 본다.
둥실 떠 있던 내 몸은 내려오고 있었다. 그 어떤 무게가 빠져나간 것처럼 아주 천천히 깃털처럼 가볍게 살랑살랑 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갓난아기를 재우려고 두 팔로 감싸 안고 아기의 등을 토닥이며 아주 조용히 자장가를 부르고 있다. 감은 눈을 보며 살며시 침대에 내려놓으려고 한다. 안은 채로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굽혀 포근한 이불 위에 내려놓는다. 아직도 내 품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려고 계속해서 토닥여 준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 일어선 후 미친 듯이 천정을 향해 뛰어오른다. 거실에서 버피테스트를 하는 내가 보인다.
나는 착지했다.
두 발로 정확하게 섰고 운전자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분명히 횡단보도는 파란불로 바뀌었고 나보다 먼저 건너는 사람이 한 사람이 있었다. 왼쪽에 정차되어 있던 택시도 있었다. 난 횡단보도 오른쪽 끝에서 건너고 있었다. 그리고 소리와 함께 움직일 수 없었다. 부딪혀 온 그 차는 파란색 1톤 트럭이었고 운전자는 남자였으며 조수석에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 차 옆에 가던 택시가 멈춰 섰고 뒤 따라오던 택시 역시 멈춰 섰다. 나는 두 발로 착지한 후 움직일 수 없었고 말도 하지 못했다. 귀에서 계속해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를 깨우는 소리도 들렸다.
"눈떠! 금아! 금아!"
이번 주는 내가 경주로 가는 주말이었다. 동부정류장에서 출발하는 경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잠들면 1시가 돈 안되어 도착한다. 경주터미널이 가까워지면 나를 깨워주는 목소리가 들린다. 주말에 비번일 경우가 잘 없지만 어떻게든 시간 내서 빨간색 베르나를 몰고 나와 나를 마중해 주던 MJ가 또 나를 깨운다.
"다 왔어."
"태워줘서 고마워. 다시 경주까지 같이 갈까?"
가지 못하고 깼다. 넘지 못한 가로막대가 떨어졌다.
"삐~~"
소리가 울린다.
"몸무게 초과입니다. 당신은 날 수 없습니다. 69킬로그램이 되면 다시 도전하십시오."
닫혀 있던 셔터문에 몸을 쳐 박으며 자해하는 운전자를 보고 정신이 돌아왔다.
"술을 마셨네."
"와! 와카노. 오늘 번 돈 다 줘야겠네."
택시기사 세 명이 내주면을 에워싸며 이런저런 말을 씨부린다. 나의 변호사들과 나의 판사들은 그 운전자에게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여자의 사과와 함께 받은 7만 원. 홍게를 끓여 팔던 트럭 아저씨는 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소주 한잔 했다고 한다. 차가 들이받았는데도 두 발로 착지한 젊은 놈에게 오늘 번 돈 7만 원을 주고 싶지 않아서일까. 자꾸 셔터문에 몸을 꼬라박으며 소리를 친다. 나는 귀찮아졌다. 그리고 판사들이 7만 원에 합의하고 마무리하라고 한다. 아직도 접혀있고 움직이지 않는 왼쪽 팔을 내려보려고 힘을 줬는데 내려오지 않았다. 왼쪽손으로 만 원짜리 7장을 들고 오른쪽 손으로 택시기사들에게 한 장씩 나눠줬다. 그리고 수고했다는 말을 붙였다. 남은 돈 4만 원을 들고 나는 다시 돌아갔다. 횡단보도를 건널 수 없었다.
날았다. 내가 스스로 날고 싶어서 난 게 아니지만 나는 날았다. 뛰어올랐고 솟구쳐졌다. 그 위에 가로막대가 있는지 몰랐다. 떨어지고 나니 알 수 있었다. 넘지 못한 것 같다. 넘어야 할 이유도 몰랐으니 말이다.
높이뛰기 가로막대를 넘지 못한 선수와 넘어 버린 선수는 차이를 알 수 있을까? 그 가로막대가 없다면 넘었는지 넘지 못했는지 알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솟구쳐 올라갈 때는 아무도 모른다. 넘어야 할 가로막대가 있는지도 몰랐다. 또 넘어야 하나? 그래서 또 날아야 하는 건가? 넘고 싶지는 않는데 날고는 싶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