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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바람

아쉬움 속의 고요를 기다리며

by rufina

금요일이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기에 신나야 하는데,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마음이 움츠러든다.
어쩌면 하루 종일 거세게 부는 바람 때문인 듯하다.


아기들에게 밥을 먹이다가,
기저귀를 갈다가도,
저녁을 준비하다가도
수시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고요하게 흐르던 파도는 심하게 출렁였고,

조금은 앙상해진 나뭇가지들도 크게 흔들렸다.


밤이 되자 그 기세는 더 사나워진다.
집 안에 앉아 있어도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가 커서 괜스레 겁이 난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창밖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뉴스에서는 “25년 만의 강풍”이라며 외출을 삼가라는 경고를 내보낸다.
몇몇 지역에선 전기가 끊기고, 다리를 건너던 차가 뒤집히기도 했단다.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저녁도 미루고 베란다부터 정리한다.
접이식 의자를 모으고, 바비큐 그릴을 벽 쪽으로 밀어둔다.
바람에 날아갈까 걱정해서다.


창밖은 이미 어둠에 잠겼지만, 바람은 잦아들 생각이 없다.
앞집 할머니는 걸어두었던 빗자루를 치우고, 다른 이웃은 집 주변을 다시 점검한다.
모두가 오늘의 바람에 놀란 기색이다.


인터넷 뉴스를 다시 확인하던 남편이 말했다.

“내일은 다리를 건너지 말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토요일을 맞아 드라이브를 갈 계획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강풍으로 집에 머물러야 한다는 게 속상했다.
나의 토요일 외출이 무산되었다는 생각에
점점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아쉬운 마음에 남편이 퇴근길에 사 온 초코 비스킷을 와그작 씹었다.

그리고 속으로 빌어보았다.
“바람아, 잠잠해져라, 나 놀러 가게.”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고른다.
바람도 언젠가는 잠잠해질 것이다.
그 고요가 오늘보다 더 반갑게 느껴지겠지.

.

.

.

인생도 그럴까.
살다 보면 바람이 몰아치는 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생 바람이 불지는 않겠지.
바람이 잘 지나가길 기다리다 보면,
다시 고요와 평온이 찾아올 것이다.

일요일, 강풍이 지나가고
아름다운 가을이 선물처럼 찾아온 듯.


강풍이 지나간 일요일, 베르겐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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