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풀던 방정식에 계수가 붙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수학자 이시가미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설계한다. X는 미지수다. 풀어야 하는 문제이자, 답을 모른 채 매달려야 하는 것.
"이번 분기 매출 목표 달성"
"브랜드 인지도 20% 상승"
"고객 이탈률 15% 감소"
KPI는 숫자지만, 실은 미지수다. 어떻게 달성할지 정해진 공식은 없다. 마케터는 캠페인으로, 개발자는 기능으로, PM은 로드맵으로 푼다. 각자의 방식으로 X를 풀며 야근하고, 설득하고, 조율한다. 때로는 운이 따라줘서 풀리고, 때로는 최선을 다해도 안 풀린다.
나도 그렇게 X에 헌신해 왔다. 팀과 함께 일하지만, 결국 내 X는 내가 풀어야 했다. 디자이너도 개발자도 데이터 분석가도 각자의 X가 있다. 서로 도우면서도 각자의 미지수 앞에서는 결국 혼자다.
a는 AI다. 혼자 풀던 방정식에 계수가 붙었다.
같은 X를 푸는데 속도가 달라졌다. 어제까지 이틀 걸리던 일이 두 시간이면 끝난다. 범위도 넓어졌다. 코드를 몰라도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고, 디자인 툴을 못 다뤄도 시안을 뽑을 수 있다. 손도 못 댔던 문제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수학에서 계수는 변수의 크기를 결정한다. X가 10이어도 a가 0.1이면 결과는 1이다. 반대로 X가 1이어도 a가 10이면 결과는 10이 된다.
그런데 계수는 양날의 검이다. AI가 뱉어낸 걸 그대로 쓰면 생각하는 힘이 무뎌지고, 검증 없이 믿으면 틀린 답을 자신 있게 내놓게 된다. 계수를 잘못 붙이면 X는 커지는 게 아니라 이상한 방향으로 튄다.
중요한 건 X만이 아니다. a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제 우리 모두의 X 앞에 a가 붙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계수는 이미 존재한다. 쓰지 않는 것도 선택이지만, 그건 a를 0으로 두는 것과 같다.
a가 1보다 클지, 1보다 작을지. 확실한 건, 이제 X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