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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 1998> 리뷰

만지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by mo r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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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처음 극장에서 볼 때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 ott에서 볼 때의 느낌은 또 달랐다

그때보다 나이가 들어서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러닝타임은 무더운 여름에 시작해서 하얀 눈이 내린 겨울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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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을 다녀와 착잡한 마음에 당장 일이 손에 안 잡히는 정원에게 처음 만나 사진 인화를 재촉하는 다림 무더운 날씨에 예민해진 다림의 마음을 조용히 두드린 건 정원이 슬며시 건넨 하얀 아이스크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정히 웃음 짓는 정원의 사람 좋은 미소 때문이었을까

주차단속요원의 관할구역에 다른 사진관도 있었을 텐데 그 일이 있은 이후로 다림은 이제 이곳을 스스럼없이 드나든다 정원이 왠지 편해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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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의 마음 한편 작은 부분은 정원을 남자로 생각해 봐서일까 만나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나이나 별자리 결혼했는지도 물어본다 그런 접근들이 정원에겐 그저 귀엽게 느껴지는 것 같다

단속 일을 마치고 동료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잠들어있던 다림

사진을 맡기고 출발하는 차 안의 자신을 따뜻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정원을 알고 있는 듯 사라지는 차 안에서 손만 내밀어 반갑게 흔든다 그렇지 정원의 사진관을 지나는데 자고 있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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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 참 좋아하는 장면인데 다림이 무거운 인쇄물을 들고 걸어가는데 다림이 스쿠터를 타고 지나치다 다시 다림으로 향할 때 가까워지는 정원의 스쿠터 소리에 미소 짓는 다림의 표정

"숙녀가 이렇게 무거운 걸 들고 가야겠어요?"

다림은 알고 있다 결코 자신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을

비 오는 날 스쿠터를 고치고 사진관으로 향하지 못하는 정원에게 찾아온 다림

함께 우산을 같이 썼는데 자신은 젖어가면서 우산의 방향은 정원 쪽으로 기울었다 그런 다림의 마음을 알고 손수건을 건네며 다시 다림 쪽으로 우산을 기울여주는 다정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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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기도, 약간의 의도이기도 했던 정원과 다림의 만남은 주로 사진관, 길가에서 이루어진다

서로가 궁금해서 각자의 인스타를 검색하거나 카톡 프로필 같은 것들은 들여다볼 수도 없었고 심지어 그때 있던 유선전화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이 마지막의 만남에서 서로의 마음을 전하려 했던 것은 손 편지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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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곳곳에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강렬하고 파격적이지 않지만 그보다 더 사람의 심장 속에 자리 잡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사랑의 표현들이 숨겨져있다

다림과 정원이 무서운 얘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어두운 골목길

정원 옆을 나란히 걷던 다림이 듣던 얘기가 무서워져 살며시 정원에게 팔짱을 낀다 그 예고 없던 터치에 잠시 정원의 얘기가 끊긴다

다시 본 영화에서 알았다 이 장면이 처음 서로의 몸이 가장 가까워진 장면이었고 서로를 바라보는 마지막 순간이었다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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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갑자기 쓰러져 입원하고 찾아갈 때마다 닫힌 사진관

하지만 다림은 그 사실을 알 길이 없다

자신의 마음을 편지로 고백했는데 그 편지를 읽기는 하셨을까

읽었다면 어찌 이리도 무심하게도 사진관은 계속 닫혀있는 걸까

대답도 들을 수 없고 소식을 알 수 없음이 답답해서

애꿎은 사진관 유리창에 화풀이를 한다

자신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했던 정원을 향한 다림의 투정 섞인 가장 적극적인 사랑의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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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병세가 진정되고 찾은 사진관에 들어선 정원은 깨진 사진관의 유리창이 보수돼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다림이 놓고 간 편지를 읽는다

그의 얼굴에 푸근한 미소가 번진다

영화는 다림의 편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짐작건대 내용이 뭐 그리 대단한 사랑의 고백은 아니었더라도

20대 여자가 늘어놓는 신변잡기 같은 자신의 일상의 변화를 늘어놓았더라도

이미 그간 나눴던 서로의 잔잔한 마음들 그리고 깨진 유리창으로 다림의 마음은 이미 충분히 정원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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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다림에게 마지막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솔직하게 행동했던 장면

관할 지역을 옮긴 다림을 수소문 끝에 찾아가 창가 너머로 바라보는 모습

그의 주머니에는 다림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자신의 마음이 담긴 편지가 들어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다림에게 찾아가 편지를 전해주지도 않고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려 하지도 않는다 죽음을 눈앞에 둔 정원은 그날이 마지막이 될걸 짐작했으면서도 그의 다림을 향한 마지막 터치는 창가에 어린 다림의 모습을 손가락으로 그저 가만히 만져보는 것으로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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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는지 하얀 눈이 내린 겨울 성숙해진 모습으로 사진관 앞에 나타난 다림

정원이 전에 찍어줬던 사진이 걸려있는 자리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미소 짓는다

전에는 그 자리에 누구의 사진이 걸려있었는지 다림은 알고 있었을까

몰랐을 것 같다

하지만 다림이 확인하고 가는 것은 정원이 자신의 편지를 읽었다는 것이고 그 마음에 대한 답은 사진관 앞에 걸려있는 자신의 사진으로 충분히 확인한 것 같은 표정이다

이 장면에서 흐르는 정원의 내레이션도 다림은 들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 내용이 편지의 내용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죽음을 앞둔 어른의 정원이 하는 말이지만 어린 다림에게는 너무 가혹하고 무겁게 다가올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성숙했더라도 지금 이렇게 미소 짓는 다림은 정원의 죽음을 끝까지 모르고 지나가는 것 같다


정원은 볼 수 없었던 이토록 사랑스럽고 환하게 미소 짓는 다림의 모습을 그의 장례식장이나 묘소가 아닌 그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관에서 보여주는 것은

오직 영화의 마지막 크레딧을 앞둔 관객에게만 베푸는 연출자의 친절이고 배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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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영화는 우리 세대가 지나고 그다음 세대에서도 계속해서 회자될 영화가 될 것이다

이런 사랑의 모습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서로의 마음은 바로 확인해야 하고 기다릴 여유도 생각도 없다

몰래 그 마음을 엿보기라도 해야 한다 인스타이든 카톡 프로필이든

아니면 전화나 메시지라도 보내서 돌아올 상대의 반응이라도 확인해 보고 싶다

어떤 이에게는 그리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간들

또 어떤 이에게는 생경해서 짐작이라도 하기 어려운 시간들

지금의 과도한 편리함과 맞바꾼 그때의 기다림과 그리움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이었는지

일깨워 주는 소중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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