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유디(AUD) 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 박원진 인터뷰
'어떻게 소통하면 좋을까요?'라는 물음을 건네는 순간부터 당연함은 단호히 해체된다.
박원진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게 하는 사람, 동시에 당연하지 않았던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불편을 감수하는 대신 구조를 바꾸고, 배려를 요청하는 대신 존중을 상상하며, 우리 모두 겪을 수 있는 감각의 차이를 사회적 언어로 전환해 왔다. 배려가 아닌 존중으로서의 ‘문자통역’은 하나의 언어 환경이자 문화였고, 이번 인터뷰는 그 문화의 기원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말이 닿지 않는 순간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그 불통은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는 태도에서 비롯된 구체적인 실천들.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조용히, 그러나 깊이 되새기게 만든다. 결국 우리에게 당연한 것은 단 하나뿐이다. 서로를 위한 웃음 앞에 장사 없다는 것. 한 해의 절반을 여유로이 맞이하기 좋은 6월의 마지막 목요일, 에이유디(AUD) 사회적협동조합(이하, AUD) 상임이사 박원진을 만났다.
1.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 게 좋을까요?
보통은 문자통역이 준비되면 좋긴 한데요. 저는 입 모양을 보고 소통이 가능해서, 혹시 제가 잘 못 알아듣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한번 여쭤보거나 확인하면 될 것 같아요.
2. AUD와 박원진이라는 사람을 분리해서 설명하기는 어려우시겠지만, 그럼에도 박원진이라는 인물에 대해 먼저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AUD에서 일하고 있고요. 창업 이후로 10년 넘게 '소통 장벽 없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저도 농난청인 당사자이고요. 영어로 표현하면 Deaf and hard of hearing people이라고 하는데, 청각장애와 같은 말이지만 장애보다는 사회문화적인 관점으로 바라봤으면 해서 농난청인이라는 용어를 활용하고 있어요. 난청인으로서 필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AUD를 설립하기 전에는 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일했어요. 교사로 일을 하면서 공립학교에 가보려고 임용고시 준비를 했었거든요. 그러려면 인터넷 강의를 들어야 하잖아요. 지금처럼 유튜브에 실시간 자막이 제공되던 시절이 아니어서, 그때는 정보 접근에 큰 어려움을 느꼈어요.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AUD를 만들게 됐습니다. 저에게 AUD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삶의 연장선이라서, 솔직히 다른 걸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AUD를 떼어놓고 저를 설명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3. 문자통역이 농난청인뿐만 아니라 노년층, 외국인, 일시적으로 청력이 약해진 사람들까지 모두를 위한 기본값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신 배경이 궁금합니다.
문자통역이 ‘기본값’이 되는 사회는, 누군가가 요청하지 않아도 모두가 자동으로 접근 가능한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런 걸 ‘배려’라고 표현하죠. 농난청인을 위한, 혹은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배려. 배려가 좋은 말처럼 들리긴 하지만, 때때로 그 말 안에 위계가 숨어 있을 수 있거든요. 배려는 보통 누군가가 불편해할 것을 전제로 해주는 것인데, 그 안에는 이미 대상화된 시선이 있을 수 있어요. 반면, ‘존중’은 그런 선별적 전제가 아니라, 누구나 당연히 있어야 할 것으로부터 출발해요. 존중이라는 말은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거고, 어떤 요청에 응한다는 건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결국 우리가 서로를 그렇게 존중하는 사회가 된다면, 문자통역이 ‘기본값’인지 아닌지를 따질 필요도 없어질 거예요. 그냥 당연한 것이 될 테니까요.
4. 원진님의 말씀을 들을수록 문자통역은 단순한 보조수단이 아나라 하나의 '언어 환경'이자 '문화'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문자통역이 선택사항이 아닌 당연한 것이 된 사회에서는 어떤 장면들이 달라져 있을까요?
저는 지금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있지만 사람의 입모양을 보면서 소통을 해요. 그런데 만약 불이 꺼진다면, 소리는 들리더라도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어요. 불을 껐다는 이유만으로도 불통의 상황이 생기는 거죠. 불이 켜져야 비로소 얼굴이 보이는데, 문자통역이 있다면 불이 꺼져 있어도 타이핑된 문자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죠. 이게 사회 전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면, 농난청인뿐 아니라 어르신, 청력에 변화가 생긴 누구에게든 도움이 될 거예요. 나이가 들면 청력도 노화되잖아요. 주변에도 은근히 한쪽 귀가 잘 안 들리는 분들이 많지만, 그게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에요. 그건 우리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요. 보이는 글자가 기본값이 된다면, “당신은 귀가 안 들리니까 이런 걸 해드릴게요.” 같은 말을 들을 필요가 없어지겠죠. "뭘 지원해 드릴까요?" 하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게 제가 상상하는 모습이에요. 소수든 다수든, 상대방이 사용하는 언어와 방식에 대해 서로가 존중하는 사회. 저는 그런 사회가 정말 자연스럽고 당연한 모습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5.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특정 감각을 '정상'으로 생각합니다. 원진님은 그 '정상성'에 어떤 방식으로 질문을 던져보셨나요?
정상이라는 말은 결국 누군가를 규정할 때 사용되는 말이잖아요. 누군가 정상이 되면 다른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비정상이 되고, 그건 때로 낙인이 되기도 하거든요. 지금은 그런 표현이 많이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너는 비정상이야’라는 낙인이 훨씬 만연했죠. 물론 지금도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는 특히 ‘극복’이라는 말을 쓰는 걸 조심했으면 좋겠어요. 극복은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나영 님께서 휠체어를 타고 계신 채로 계단 앞에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본인의 노력으로 그 상황을 극복하는 게 가능할까요? 그건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만들어야 하는 환경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엘리베이터가 대표적인 예시죠. 사회적 구조와 배려, 인프라가 있어야만 이동이 가능해지는 거니까요.
6. 일상 속에서 감각을 기준으로 구분 짓거나, 감각 때문에 주변화되는 경험을 겪거나 목격하신 적이 있나요? 잘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감각 외적인 것들까지 제한되거나 판단받았던 기억이요.
처음에 저한테 “목소리 크게 할까요?” 물어보셨잖아요. 사실 흔히 듣는 말이지만, 거기엔 이미 ‘너는 귀가 안 들리니까 내가 이렇게 해줄게’라는 전제가 깔려 있죠. 그래서 크게 말해줄까요? 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길 원하시나요? 묻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그 질문이 있어야 비로소 본인이 원하는 소통 방식에 대해 얘기할 수 있거든요. 어떤 사람은 그냥 평소처럼 말해도 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수어 통역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먼저 정해진 방식으로 단정하고 다가오죠.
특히 이런 상황은 병원에서 자주 일어나요. 의료진은 환자를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제가 잘 듣지 못한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는 묻지 않고 그냥 목소리를 크게 내요. 크게 말하면 진료실 밖까지 다 들려요. 그럼 되게 민망하거든요. 한 번은 눈에 염증이 생겨 레이저 치료를 받으러 갔었어요. 따가워서 눈을 뜰 수 없었는데, “눈 뜨세요!” “눈 못 뜨겠어요…!” “눈 뜨라고요!!!!”. (소리를 지르시는구나) 네. 보통 환자 같으면 “눈 감으시면 안 돼요” 정도로 말할 텐데, 안 들린다는 생각에 목소리만 커지는 거죠.
이건 단순히 개인적 경험이기도 하지만, 감각을 중심으로 정상적인 소통 방식을 미리 정해놓는 사회 분위기 안에서 발생하는 일이에요. 그 사회 안에서 누군가는 계속 주변화되고, “그 사람은 불편할 테니 이렇게 해야 해”라는 단정이 오히려 낙인처럼 작용하기도 하죠.
7. 개인적으로 저는 문자통역의 필요성을 늘 느껴왔어요. 근데 농난청인을 위한 문자통역이 아니라 청인인 저를 위한 문자통역의 필요성을요. 콘텐츠를 볼 때도 자막 없이는 못 보는 사람이고, 주변 친구들 다 좋아하는 연극과 뮤지컬 관람이 저에게는 늘 지루했는데, 그 이유가 대사를 잘 알아듣지 못해서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다 최근에 ‘로비’라는 극을 관람했는데 접근성 공연이라 화면에 대사가 함께 제공되더라고요. 그 덕분에 제가 본 공연 중에 가장 몰입해서 본 공연이 되었고, 가장 많이 울었던 작품이 되었어요. 물론 앞서 말한 사례들은 통역보다는 자막 서비스에 가깝지만, 저희끼리 하는 회의나 종종 참여하는 세미나 같은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에 있어 저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은 시각, 더 구체적으로는 문자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원진님은 어떠세요? 현재의 원진님은 소통에 있어 어떤 감각을 가장 중심에 두고 계신가요?
지금처럼 조용한 공간에서 대화할 땐, 말로 소통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모두가 저와 같은 조건은 아니기 때문에, 청력 정도에 따라 필요한 소통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어요. 농인이라면 수어 통역사가 반드시 필요하고요. 그런데 수어 통역사가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통역사만 바라보고 얘기하게 되거든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실제로 듣고 있는 사람을 향해 말하잖아요. 나이 드신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면 의사도 자녀한테 이야기하고, 어릴 때는 늘 보호자에게 먼저 말이 닿는 것처럼요. 말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질문하면서 말해주신 경험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확실히 넷플릭스 이전과 이후로 감각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 같아요. 넷플릭스 볼 때 자막 켜고 보시죠? 왜요? (편해서요.) ‘자막이 편하다’는 감각적인 경험을 해보셨다는 뜻이에요. 이전에는 자막에 대해 ‘왜 해줘야 돼?’, ‘비용이 드는 거잖아’라는 인식이 많았지만, 넷플릭스는 미국 기업이다 보니 장애인법을 따라 자막을 기본적으로 제공하거든요. 그 덕분에 우리는 소리 없이도 콘텐츠를 볼 수 있구나, 한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걸 경험하게 됐고요. 실제로 청취에만 에너지를 집중하면 쉽게 피로해지는데, 자막이 있으면 훨씬 덜 지치죠.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이미 해봤음에도 불구하고, 알면서도 지원을 안 해줄 때인 것 같아요. 경험과 지식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경험까지 같이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그 감각을 몸으로 겪게 해주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8. 청인 혹은 비장애인에게는 내가 어떤 감각을 주 감각으로 사용하는지 깊이 고민할 기회가 흔치 않은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가끔, 음성보다 문자로 소통하는 게 훨씬 편하다는 친구나 화면을 오래 보는 게 힘들어 전화를 더 선호하는 부모님처럼, 서로 다른 감각을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는 걸 실감하게 되곤 하는데요. 이렇게 감각의 방식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감각적 차이에 대한 논의는 아직 사회 전반에서 활발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이제서야 대세감으로 느껴지는 정도랄까요?
저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빠른 편이라고 생각해요. 나라가 좁다 보니 문제를 제기하면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비교적 빠르게 일어나기도 하죠. 물론 아직 부족한 부분은 많지만요. 예를 들어, 미국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잘 되어 있다고 해도, 또 실제로 그렇지만은 않아요. 유럽 역시 오래된 건물이나 도로가 많아서 휠체어 접근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요. 문화재 접근 문제도 있어요. 거기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구조물을 훼손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니까요. 우리나라의 경우, 예를 들면 경복궁 같은 공간에도 휠체어 관람객을 위한 이동로가 마련되어 있잖아요. 물론 완벽하진 않지만, 그런 노력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경제발전에 모든 우선순위가 있었지만, 지금은 복지에 대한 관심도 커졌고, 경사로나 접근성 개선 같은 변화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죠. 그래서 저는 부정적으로만 표현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예전보다 훨씬 더 들으려는 태도, 고치려는 태도가 생겼다고 느껴요. 100%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그 부족함을 인정하고 계속해서 요구하고, 촉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사자 입장에서는 작은 차이 하나도 크게 다가오니까요.
9. 감각의 위계가 없는 세계를 상상해 봤습니다. 같은 비율로 감각 기관이 하나씩 부족한 게 세상의 기본 옵션이라면, 그곳에서 원진님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제 기준에서 상상해 보면, 만약 아무도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아마 수어로 얘기하거나 문자로 소통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안에서도 언어의 뉘앙스는 분명 존재하겠죠. “나는 니를 좋아해”와 “난 니 좋거든”은 다르잖아요. 그건 말투뿐 아니라 표정이나 얼굴의 움직임을 통해서도 드러나니까. 이 친구가 내 말에 똥 씹은 표정을 지을 수도 있는 거고요. 미안해요. 어쨌든 수어를 쓰든, 표정을 쓰든 자신만의 언어로, 각자만의 방법으로 소통하고 있지 않을까.
10. 저희가 평생 말하는 양에 비해, 말이 닿지 않았던 순간들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왜 함께 하고 있어도 서로의 말이 닿지 않는다고 느낄까요? 원진님이 경험한 ‘말이 닿지 않는’ 순간은 어떤 맥락이었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뜨달이라는 팀 안에서도 똑같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방향은 같아도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잖아요. 같은 걸 바라봐도 각자 다르게 해석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고요. 저는 ‘서로가 같은 말을 하고 있어도 다르게 이해하고 있을 때’가 말이 닿지 않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가정환경이나 속해 있는 공동체, 자라온 삶의 방식처럼 각자 다른 관점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고요. 문자통역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은 한 사람을 위해 돈을 쓰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게 당연한 권리라고 하잖아요. 이런 관점 차이 자체가 불통의 구조라고 생각해요. 결국 말이 닿지 않는다는 건, 말의 문제가 아니라 말을 해석하는 방식과 서로의 세계를 얼마나 존중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11. 원진님께서는 난청인 당사자이시기도 하면서, 동시에 모두의 소통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계시잖아요. 누구보다 소통의 중요성을 깊이 실감하고 계시고, 또 실제로 소통을 절실히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만큼 반대의 불통의 상황에도 남들보다 기민하게 느끼실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떤 순간에 불통을 가장 강하게 느끼시는지 여쭙고 싶어요.
공허한 메아리라고 해야 할까요.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인데 각자의 이야기만 할 때, 특히 알고 있으면서도 딴 소리를 할 때 저는 불통을 가장 강하게 느껴요. 가장 대표적인 불통의 경험은 학교에 있을 때인 거 같네요. 학교라는 공간은 대다수가 청인이고, 체육활동이든 음악활동이든 말하고 듣는 방식의 소통이 대부분이에요. 입모양이라도 보려고 일부러 맨 앞자리에 앉아도 선생님이 판서를 하느라 뒤돌아 계시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죠. 이건 농난청인이 자주 겪는 전형적인 불통의 순간인 거 같아요. 시각장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전맹인 학생에게 “몇 페이지 펴세요, 두 번째 문장 줄 긋고 별표 치세요.”라고 말해도, 점자 교과서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알 수 없죠.
사실 이런 불통은 비장애인에게도 있어요. 상위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될 때, 중하위권 학생들이 따라가기 힘든 상황, 선생님이 설명해 주시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도 결국 불통이죠.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경험하는 불통의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원하는지를 먼저 듣는 일, 경청이라고 생각해요.
11-1. 학생이 아닌 교사로서 학교에 계셨을 때는 어떠셨나요?
교무회의처럼 전 교직원이 함께 모이는 회의에서는 교무부, 연구부, 행정부 등 다양한 부서의 선생님들이 모두 모이기 때문에 입모양을 볼라 캐도 안 보이니까. 옆에 앉은 선생님의 필기를 보거나, 눈치껏 회의 내용을 파악하곤 했어요. 그런 경험들이 누적되면서, 교사에게도 문자통역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서울시에서는 재작년부터 교사 대상 문자통역 제도를 도입했는데, 솔직히 너무 늦게 도입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동안은 대부분 학생 중심의 지원이었지만, 최근 들어 장애를 가진 교사들에게도 조금씩 제도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장애를 가진 교사들은 여전히 흔치 않지만,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신 분들이 정말 많아요. 제도적 지원이 부족했던 만큼, 개인의 힘으로 버텨야 했던 시간들이 많았을 거예요. 그래서 더더욱 이런 제도들은 빠르고 일상적인 형태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12. 불통이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느낀 경험이 있으신가요?
불통의 상황은 늘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왔던 것 같아요. 2014년에 AUD를 법인으로 설립한 것도 마찬가지예요. 그때는 수어 통역은 지원되지만 문자 통역은 지원되지 않았고, 그래서 생기는 불통의 현실 속에서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거죠. 지금은 너무나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도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는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었고. 그래서 저는 불통에서 끝-이 아니라 늘 무언가를 바꾸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13. 듣는다는 건 단지 소리를 받아들이는 것 이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눈앞에 있어도 보고 싶은 거면 그건 보고 싶은 게 아니라 듣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는데요. 원진님께 듣는다, 듣고 싶다는 어떤 의미인가요?
듣는다는 건 공기와 가까운 감각이라고 생각했어요. 공기가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 그만큼 삶과 직결된, 본질적인 감각이라는 점에서요. 화재가 났는데 경보음을 듣지 못하면 대피하지도 못하고… 물론 요즘은 불빛이나 진동 같은 보완 수단이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듣는다는 건 단지 소리를 받아들이는 행위 이상이라는 걸 느껴요.
그렇지만 또 다른 맥락에서는 공기 안에도 다양한 성분이 섞여 있듯, 듣는다는 것도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뿐 아니라 감정, 맥락, 뉘앙스 같은 것들이 함께 있는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는 단순히 소리를 듣고 싶다는 뜻보다, 그 마음을 알고 싶다는 말일 수도 있겠고요.
14. 이 인터뷰에서 저희가 원진님께 일방적으로 질문을 드리는 이 구조 자체도, 하나의 위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진님께서 저희에게 되묻고 싶은 질문이 있으실까요?
근데 나는 이게 위계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고요. 평소에 받아본 질문과는 달라서 낯설긴 했지만,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느꼈어요. 질문 자체가 마음에 안 들거나 뭘 떠보려는 건가? 같은 불편함을 느낀 적도 없어요.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볼 수 있었고요.
그래도 다른 상황에선 위계가 있기도 하죠. 종종 언론에서 왜곡된 질문을 하거나, 왜곡된 답변을 하게 유도를 하는 경우는 분명 질문하는 쪽의 권력이 작동하는 순간이라 위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되묻고 싶은 질문은… 그렇다면 당신에게 감각은 무엇인가요?
15. 말보다 더 명확하게 닿았던 소통의 순간이 있다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 때 나 자신이 더 온전하다고 느끼시나요?
지금 이 상황에서도 내가 원하는 걸 해주고 있잖아요. 굳이 목소리를 크게 할 필요 없고 평소대로, 잘못 들었더라도 다시 물어보면 자연스럽게 다시 대답해 주려고 하시고, 이해를 못 하면 이해를 할 수 있게 다시 설명해 주시고 그런 상황. 그 안에서 저는 소통되고 있구나를 느껴요. 그게 결국 나라는 존재를 인정해 주고, 그에 맞춰 함께하려는 태도잖아요.
16. 소통이 불통이 되지 않기 위해, 고통이 덜하기 위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감각은 무엇일까요? 보편적으로 언급되는 오감, 그러니까 생물학적 수용기관을 통한 자극을 제외하고, 태도로서의 감각이요. 말보다 긴 침묵에도 귀 기울이는 감각, 정리되지 않은 말도 괜찮다고 느끼는 감각 같은 것들이요.
태도로서의 감각... 저는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느끼는 감각이 우선시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늘 정답만 찾아가려 하잖아요. 사실 오늘도 우리가 소통할 때 반드시 문자 통역이 정답은 아니에요. 노트북을 들고 왔으니까 옆에서 타이핑해서 보여줘도 되고요. 꼭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감각. 그런 감각이 있으면 나도 상대방도 조금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17. “사람은 독립적인 존재라고 하지만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움이 필요해요. 함께하는 세상인 만큼, 타인의 어려움을 남 일처럼 여기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여쭤보고 싶습니다. 타인의 어려움을 남 일처럼 여기지 않는 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갖는 것. 이 두 태도 중 무엇이 먼저라고 생각하시나요?
남일처럼 여기지 않는 마음이 있어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 같아요. 이 상황에서도 이 대화를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고 인터뷰를 하잖아요. 본인 걸로 만들기 위해서, 라던지.
17-1. 남 일처럼 여기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친구처럼 생각하면 돼요. 남의 일이 내 일이 되기는 쉽지 않잖아요. 근데 저는 남일을 내 일처럼 해요. 내 일 자체가 그래요. 펠로우십 프로젝트도 그래요. 이번에 선발된 펠로우가 웹툰 작가인데, 저희는 작가님이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단순히 지원금만 주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연결과 조력을 함께하려 하고 있어요. 한국어와 한국 수어 구조가 다르니까 수어로 만들어진 콘텐츠를 청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루트임팩트의 ‘AI for Impact’ 프로그램과 연계해서 AI 기술로 수어를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번역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또 하나는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농인 풋살팀을 만들었어요. 되게 의미 있잖아요. 그런데 프로도 아마추어도 아니어서 재정이 없어요. 내가 구단주가 되어서 스폰서를 끌어오고, 그분들이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돕고 싶어요. 타인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여긴다는 게 그런 거 같아요. 내가 갖고 있는 재능과 지식을 나누면서 같이 성장하는 거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요.) 그렇죠. 아뜨달도 서로서로 잘 됐으면 좋겠잖아요. 물론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속담도 있고,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해 주고 그럼 좋죠.
18. 월 50만 원 활동비를 지원하는 펠로우십 프로젝트가 인상 깊었습니다. 경제적 자립과 농난청인의 커뮤니티를 병행하며 연결과 자립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고민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나요?
활동비를 지원한다는 건 그만큼의 시간을 확보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금액이 크지 않지만, 그만큼
은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주니까요. 예를 들어 풋살도 연구를 해야 되잖아요. 작전도 짜야하고, 말로 소통하기 어려우니까 배구처럼 손가락 사인을 주고받는 방식 같은 것들 것 연구해야 하고요. 그런 활동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가치 있는 일로 지속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이어가고 싶죠.
19. 모든 대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통을 하다 보면 종종 유달리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있잖아요. 문자 통역 서비스를 지원하시는 분인 만큼, 오늘 저희의 대화가 문자 통역이 지원되는 대화였다면, 이 인터뷰에서 어떤 문장이 화면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좋겠다고 느끼실까요?
이번엔 몰라서 그랬던 거니까, 다음에 농난청인 당사자를 만나게 되면 어떤 의사소통 방식, 어떤 지원이 필요하신가요? 먼저 물어봐야지. 그런 문장이요. 앞으로 함께 일하거나 소통하게 될 때, 먼저 어떤 방식이 편하신지 물어보는 태도가 있으면 좋겠어요.
20.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살아간다’는 문장처럼, 저마다 다른 조건과 감각으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원진님께서는 ‘나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가장 선명하게 느꼈던 순간이 있으셨을까요?
AUD에서 진행하는 ‘소통이 흐르는 밤’이라는 행사에서요. 농인, 난청인, 청인, 어린아이, 노인, 남성, 여성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서 강연도 듣고 부스도 구경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요. 누구는 수어, 누구는 문자, 누구는 입모양으로 소통하고. 어떤 곳에선 박수 소리가 들리고 어떤 곳에선 수어 박수(손 흔들기)가 보이고. 한 공간에서 정말 다양한 감각이 공존하고, 각자의 특성에 따라 보여주는 다양함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감각이 또렷하게 전해졌어요.
진심과 달리 말은 언제나 미끄러지고, 어긋나고, 빠르고 또 느리기에,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서로 닿지 않는 순간은 늘 잇따른다. 이처럼 통제하기 힘든 불통의 상황을 피하기에 여념 없던 시기에 박원진과 함께한 인터뷰의 시작은, 내면의 위계를 마주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용기를 우리에게 허락해주는 일이었다. 그의 솔직함과 침묵 사이에서, 우리는 언제 찾아올지 모를 어긋남을 염두에 두고서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다. 그 웃음 안에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조금씩 익혀갔다.
완전한 소통을 위해 누구보다 불통에 맞서는 이들을 찾아가는 이 인터뷰는, 우리에게도 계속해서 마주할 용기를 요구하는 끊임없는 도전이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살아간다. 그 말인즉, 예외 없이 누구도 불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대신에 우리는 그 간극을 이해하고, 조금 더 깊이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어두운 밤 조용히 곁을 밝혀주는 달을 사랑하듯,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Interviewee 박원진
Interview 엄나영
Research 배정아
Edit 엄나영
Photography 배정아, 김윤이
Design 김윤이
© 2025 arttdal. 김윤이, 배정아, 엄나영
우리는 분명 듣고 있는데, 왜 서로에게 닿지 못할까.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살아가〉는 아뜨달의 인터뷰 시리즈로, 모두가 같은 달 아래 존재함에도 감각의 위계와 소통의 불균형이 지속되는 현실을 은유합니다. 우리는 ‘불통’을 감각의 부재가 아닌 내면에 자리한 위계의 문제로 바라보며, 그 간극을 드러내고 해체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