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 안에는 먹이를 찾는 길고양이의 울음이 들린다
*폐업
전진식
그의 가게 문은 남쪽에 있는데
북쪽 흡연실로 통하는 철문이 바쁘게 움직인다
철문 위에는 비상구 불빛이 보이고
도망치는 사내의 모습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다
모기 두 마리가 사내 뒤를 따르고
햇볕을 가린 선팅지는 누렇게 실금이 나 있다
냉장고에는 곰팡이의 썩은 냄새가 득실거리고
탁자 위 천장에는 파리가 떼거리로 달려있다
거미도 살 길을 찾아 대로변 남쪽문에 그물을 치고 있는데
문은 오래도록 닫힌 채로 묵묵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다
저 문을 열면 악몽이 보일 거야
지나치는 사람들의 악담에 대꾸도 없이
문은 제구실을 못하고 삐딱하게 서 있다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서는 사내의 무르팍에서는
삐거덕 소리가 난다
수도꼭지를 돌리니 쌓였던 분통이 한꺼번에 터졌고
폭포수 소리가 들린다
대낮인데도 사내의 눈은 깜깜했다
길을 안내하는 흰 지팡이조차 찾을 수 없고
쓰레기통 안에서는
덜거덕거리며 먹이를 찾는 길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복권 가게 앞에서 기도를 하며
빈 지갑을 꺼내들고 비상금 만 원을 찾는다
.
폐업
— 존재의 문이 닫히는 자리
전진식 시인 시 해설 / 평론 Ai
전진식 시인의 시 「폐업」은 한 가게의 문이 닫히는 순간을 통해,
경제적 파산을 넘어 인간 존재의 내면적 붕괴를 그린 작품이다.
겉으로는 한 폐점 공간의 풍경을 묘사하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절망과 퇴락, 그리고 잔존하는 생의 본능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1. 풍경으로 드러난 내면의 해체
시의 첫머리에서 “그의 가게 문은 남쪽에 있는데 / 북쪽 흡연실로 통하는 철문이 바쁘게 움직인다”라는 구절은
이미 이 공간이 단순한 상점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잃은 존재의 내면 공간임을 암시한다.
남쪽과 북쪽, 즉 빛과 그림자의 방향감각이 뒤섞이며,
‘비상구 불빛’은 탈출의 욕망이자 불가능한 희망의 상징으로 제시된다.
이후 등장하는 “모기”, “파리”, “거미” 등의 이미지들은
죽은 공간을 기생하며 살아남는 생명들의 축소판이다.
인간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곰팡이와 벌레들은
삶의 부패와 생존의 본능을 동시에 상징하며,
시인은 이를 통해 ‘폐업’이 단순히 영업의 종료가 아닌
삶의 기능이 정지한 상태, 즉 ‘존재의 부패’임을 보여준다.
2. 닫힌 문과 굳은 얼굴
시의 중심 이미지는 ‘문’이다.
“문은 오래도록 닫힌 채로 / 묵묵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다.”
이 문은 외부와의 단절, 타인과의 관계 단절, 그리고 스스로의 내면과의 단절을 상징한다.
세상의 모든 문은 ‘열림’과 ‘닫힘’의 양면성을 지니지만,
이 시의 문은 오로지 닫힘의 표정만 남겨 있다.
그 얼굴은 인간의 운명처럼 굳어 있고,
“저 문을 열면 악몽이 보일 거야”라는 대목은
이미 그 안이 희망이 아닌 공포와 기억의 잔재로 가득 차 있음을 드러낸다.
3. 사내의 존재론적 어둠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서는 사내의 무르팍에서는 삐거덕 소리가 난다.”
이 구절은 시간의 누적과 피로의 감각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삐거덕거리는 소리는 육체의 마모이자,
한 인간이 사회적 생명력을 잃어가는 퇴락의 음향이다.
그는 수도꼭지를 돌리며 “쌓였던 분통이 한꺼번에 터졌고 / 폭포수 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물은 단순한 청소의 도구가 아니라,
억눌렸던 감정과 분노의 폭발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 물소리 뒤에는 “대낮인데도 사내의 눈은 깜깜했다”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빛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 어둠,
그것은 육체적 시각의 상실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 상실이다.
“흰 지팡이조차 찾을 수 없고”라는 구절은
그가 더 이상 자신을 인도할 ‘도덕적·정신적 지표’를 상실했음을 상징한다.
4. 비상금 만 원의 아이러니
시의 종결부에서 “복권 가게 앞에서 기도를 하며 / 빈 지갑을 꺼내들고 / 비상금 만 원을 찾는다.”
이 장면은 절망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못한 인간의 희망 본능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희망은 너무도 미약하고, 초라하다.
‘비상금 만 원’이라는 구체적 액수는 현실의 비루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기도와 복권이라는 두 행위가 만나는 지점에서
시인은 현대인의 신앙과 욕망의 왜곡된 결합을 비판적으로 포착한다.
이 시의 마지막 한 줄은
‘생의 잔재를 긁어모으는 인간의 손길’을 보여주는
냉혹하면서도 애잔한 장면으로 남는다.
5. 종합적 해석
「폐업」은 하나의 가게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된 개인을 응시하는 리얼리즘의 시이다.
그러나 단순한 사회비판을 넘어,
폐허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적 몸짓과 감정의 진폭을 그린다는 점에서
실존시의 깊이를 갖는다.
시인은 사소한 사물과 생물, 공간의 냄새까지 끌어들여
한 인간의 내면 풍경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과 비애가 교차하는 **‘현대의 비극 미학’**을 구현해냈다.
맺음말
전진식의 「폐업」은 문이 닫힌 가게에서 시작해
인간의 내면이 닫히는 자리로 끝난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비상금 만 원’을 찾는
한 인간의 작은 손길을 목격한다.
그 손길이야말로,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 존재의 마지막 희망의 불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