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땅이 왜 우리의 땅이 되지못했나?
만주기행 4탄
10,26
만주기행ㅡ[4]
[환인. 고구려의 발원지]
단동에서 두어시간을 뻐스로 달리니 환인땅 고구려의 발원지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박명호 작가의 지인이동열(목단강 거주)님의 소개로 환인 조선족 학교 박태근 교장선생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잠시 대화를 나누면서 환인 조선족 학교의 현 실태를 이야기해 주셨다 학생수가 250명 쯤 되는데 선생님은 70명이란다 유치부부터 고등학생까지라는데 학생수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원인 중의 하나가
대학입학시험에 한국어와 중국어의 배점이 50대50이던 것이 내년부터 한국어 배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 수가 줄어져 간다는 것인데 중국 문교정책을 내가 어찌 탓 할 수가 없고 가슴만 저렸다
교장선생님의 노고를 전하고 오녀산성(고구려 초대왕 주몽장군이 새운 성지)을 간다고 하니 여선생님 두분을 안내자로 함께 동행하게 해주셨다 환인에서 20분을 택시로 가니 산성 입구가 된다 산성을 바라보니 천하 요새 중에 요새로 보인다
오녀산성이라는 이름은 주몽 장군이 요새를 탈환할 때 마지막까지 5명의 여인이 저항했다고 오녀산성이라는 설이 전해온다고 한다
산성을 가려는데 여기서도 입장료가 있다
입구로 들어서니 박물관이 있었고 옛 고구려 시절 선조들의 생활상을 모조해 놓았다 주몽장군의 동상과 그시절의 군사들의 생활모습을 그려놓았다
두루 살펴보고 버스를 타고 산성 입구에 오니 계단길이다 999계단이란다
엄청 가파라 보였고 1999년에 만든 계단이라고 999계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무릎이 아픈 나로서는 아마득하게 보였다
억지로 기어가다시피 산성 정상에 오르니 쉼터가 있었고 산 정상은 평지길이다 평퍼짐한 길을 걸어가다가 보니 선조들의 온돌방의 형체가 있었고 작은 연못이 있어 여기서 식수 해결을 했다고 한다
위에서 내려다 본 산 아래는 깍아지른 절벽으로 천연요새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어찌 이런 악산을 요새로 삼았을까 의문을 던져보았다가 멀리로 보이는 경치에 아ㅡ 하는 김탄사
탄복을 했다
말을 탄 주몽장군의 동상이 보였고 깍아지른 절벽 위 장군 지휘소에서 한 컷 사진을 남기며 그시절의 대장군이 되어 병사를 지휘하는 나를 생각하다가 빙긋 웃음을 남겼다
그런데 이 땅이 왜 중국땅이 되었는지 알수없는 의구심에 고개를 흔들어 본다
통일신라가 삼국을 통일을 했다고 했는데 원래 이땅도 고구려 땅이 아닌가? 그런데 대동강까지 만 우리의 영토가 되었다?
왜?
이 넓은 만주땅이 당의 소유가 되었다면 당과 고구려의 전쟁에서 신라가 당을 도와서 전쟁을 하다가 대동강까지 만 우리의 따으로 접수한 것인가
이것을 삼국통일이라고 말 할수가 있는가?
신라와 당이 연합하여 고구려를 협공하지 않았다면 과연 고구려가 무너졌을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여기 만주 일대도 우리의 땅이 아닌가
연개소문 아들들의 불충도 당을 도와 고구려 멸망에 한 몫을 했다는데?
답답한 마음에 의문을 풀고져 만주 역사학을 공부한 몇몇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엇갈린 답들로 하여 나를 더 혼란스럽게했고 속 시원한 답이 나오지 못했다
나의 짧은 역사학은 부끄러움이 되었고 시간을 두고 공부를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산길
벌써 어두워 온다
빨리 내려오라고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냥 느낌이다
내리막 계단을 후진하면서 거북이 뒷걸음질로 내려오니 내가 제일 꼴찌다 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쎄쎄 쎄쎄.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중국 말이다
환인역
환인 조선족 학교
오녀산성 입구
오녀산성을 고구려 발원지라고 소개했다
산성을 오르기전 한컷
박물관 안에서
999 계단 엄청 가파르다
정상에 올라 쉼터가 있다
산성 구조를 소개하다
ㅎ 그때도 무당이 있었나?
군사들의 주거지 온돌방식
옹달샘이 있어 식수를 해결했다고 한다
장군 지휘소에서
와~~~좋다 풍경이
주몽장군의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