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린 시절,
마루 끝에서 곰방대를 피우던 자신의 할머니를 바라보곤 했다고 했다.
담배 연기가 천천히 위로 오르다
흩어지며 사라지는 모습을 따라가던 그때,
할머니는 늘 한마디를 남겼다.
“인생은 쏘아 놓은 화살 같다."
그 말이 그땐 잘 와닿지 않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70대 노인이 된 엄마는 그 문장을 자주 떠올린다.
“살다 보면 정말 그렇더라.
훅 지나가는 날들이 많아.”
1952년에 태어난 엄마는
전쟁이 끝난 지 오래지 않은 시절을 살아냈다.
마을은 흙먼지와 연탄 냄새로 가득했고,
아이들은 금세 철이 들었다.
그 집에서 엄마는 유난히 조용한 아이였다.
언니들은 고무대야에 빨래를 하고,
오빠들은 마당에서 떠들며 뛰어다녔지만
엄마는 그 틈 사이에서
작은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누가 부르면 바로 대답했지만
스스로 목소리를 높이는 법은 없었다.
부엌에서는 연탄을 갈아 끼우는 소리가,
마당에서는 먼지가 일어나는 소리가 하루를 채웠고
엄마는 그 속에서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아이였다.
아궁이 앞에서 어머니가 허리를 굽히면
엄마는 장작을 조용히 옮기고,
헝클어진 고무신을 가지런히 놓고,
떨어진 숟가락을 씻어두었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내가 먼저 해야 한다’는 조용한 마음이
엄마 안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시절,
많은 말은 오히려 짐이 되었다.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었고
조용한 아이는 조용한 대로
자기 자리를 스스로 지켜야 했다.
엄마는 밥상에서도
큰오빠에게 국을 먼저 밀어주고
자신은 늘 마지막에 숟가락을 들었다.
도시락에 보리밥과 고추장만 있던 날도
한 번도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작은 몸에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엄마는 어른들 사이에서
믿음직한 아이로 기억되었다고 했다.
말없이 움직이고,
울지 않고,
남의 몫을 먼저 챙기는 아이.
엄마의 그 시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엄마의 조용함은 성격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몸으로 익힌 방식이었다는 걸.
작고 왜소한 아이였지만
그 마음은 누구보다 단단했고
그 단단함은 평생을 버티게 해 준
엄마의 오래된 뿌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굽은 손가락을 바라볼 때마다
그 조용했던 아이가 지나온 긴 세월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다음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