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밸리 첫날, 고통과 아름다움 사이
2019년 9월 9일 월요일.
Day 1 칠링(3,170m)~카야(점심 식사)~스큐(3,380m)~사라(3,570m)
이동거리 : 22km
이동시간 : 7시간
여정의 시작, 낯선 듯 닮은 사람들
– 레의 가이드와 포터, 그리고 티베트에 가까운 라다크의 문화
드디어 마카밸리 트레킹을 시작한다. 투어 회사 앞에서 어제 먼저 인사를 나눈 가이드 갤포와 포터 무릎을 만났다. 이 둘은 레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겉모습이 우리와 비슷했다. 라다키(라다크 인)들의 국적은 인도이지만 지리상 더 가까운 티베트와 생활문화나 인종적으로 비슷하다고 한다. 언어도 티베트 방언인 라다크어를 쓰고, 곳곳에서 불교 상징물을 많이 볼 수 있다.
포터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놀라움’이었다. 복장이 너무 말끔했다. 한 손에는 아이폰을 쥐고 나이키 신발에 아디다스 바지에 멋스러운 선글라스를 꼈다. 그래서 우리 같은 관광객인 줄 알았다. 그동안 네팔과 인도네시아에서 봤던 포터들이랑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진보다 거대한 현실, 칠링으로 가는 길
– 스케일에 압도당한 버스 여정
버스를 타고 칠링으로 가는 길은 사진 속에서 봤던 모습들보다 훨씬 경이롭고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쭉 뻗은 도로와 황량한 바위산들은 미국 그랜드 캐니언을 연상하게 했다. 40~50분 달리고 나서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는데 여전히 장관을 이루는 바위산들이 어마어마하게 펼쳐져 있었다.
얼마 지나 않아서 잔스카르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줄기도 세고 물의 양도 많아 위압적이었다. 이 시원한 강줄기를 왼편에 끼고 걷는 게 마카밸리 트레킹 시작이다. 칠링 다리까지 차를 타고 가기로 했으나 도로 공사가 한창이라 멈춰야 했다. 공사 중인 차량들이 빠지려면 1시간 30분이 걸린다기에 지체 없이 여기서부터 걷겠노라고 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정식 트레킹 시작 지점에서 사람들이 강을 건너기 위해 이용했다는 도르래 트롤리 박스가 보였다. 이것을 타고 강을 건너는가 하는 기대감이 살짝 있었는데 최근에 건설된 철교로 건넌다고 했다.
먼지구덩이를 뚫고 걷는 길
– 흙먼지와 매연 속에서 지쳐 도착한 카야마을
이때까지 마카밸리 트레킹은 실망스러웠다. 사방에서 공사를 하고 대형 트럭들이 지나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흙먼지와 매연이 사방에 날렸다. 이 흙먼지 들은 카야까지 2시간 내내 함께했다. 매연과 먼지로 금방 지쳐버린 우리는 원래 예정된 장소보다 30분 전에 있는 작은 마을 카야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레에서 준비해 온 런치 박스를 먹으며 오늘 숙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점심도시락은 샌드위치, 찐감자, 찐계란, 바나나, 초코바, 쥬스이다.
원래 예정지는 30분 거리에 있는 스큐였지만 에너지와 의지가 넘쳤던 우리는 더 멀리 가고 싶다고 했다. 갤포는 “그럼 3시간 떨어진 사라마을”이라고 했고 우리는 “사라에서 숙박하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다. 가이드의 3시간은 우리의 5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막 같은 고산, 40도의 태양과 3,000m의 평지
– 고통 속에서 만난 당나귀들과 극한의 햇볕
다시 트레킹을 재개했지만 1시간쯤 지나 이내 지쳐버렸다. 주변 경관도 삭막하고 차들이 내뿜는 먼지도 짜증이 났다. 무엇보다 강렬한 햇볕이 정말 힘들었다. 선글라스를 써도 막을 수 없다. 40℃, 그늘 없는 땅인데 건조해 몸을 식혀줄 땀도 안 난다.
설상가상으로 당나귀 20마리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가로막기도 했다. 여행자들의 캠핑용품을 싣고 가는 무리인데 1마리가 가기 싫다고 딴청을 피워서 모두 멈춰 섰다고 했다. 이런 일이 익숙했는지 가이드가 앞장서서 길을 터주었고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왔다. 당나귀들의 파업으로 길이 막히다니 새삼 신기한 경험이었다.
첫날의 트레킹길은 오르막길이 초반에만 잠깐있고, 나머지 그늘이 없는 큰 협곡길을 따라 걷는다. 하지만 이 평지가 그냥 평지가 아닌 3,000m가 넘는 고도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늘 없는 사막지대를 걷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너덜너덜해진 다리는 거의 반자동으로 움직였다. 입술과 눈은 건조하고, 특히 코가 말라서 숨쉬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렇다고 입으로 숨을 쉬자니 목이 건조해져서 물을 계속 마시게 되어 물배가 쉽게 찼다.
포터에게 짐을 일부 맡겼어도 짊어진 배낭이 너무 무거웠다. 그렇게 걷고, 걷고, 걷다 보니 대망의 숙소가 보였다. 숙소에 도착한 순간 안도감과 함께 갑자기 행복해졌다. 물 한 잔을 마시자 오는 동안 있었던 불평불만들이 어디로 갔는지 입가에 미소가 띠워졌다.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반 정도였는데 이미 날이 어두워졌고 바람도 꽤 차가워졌다. 햇볕이 사라지니 급속하게 기온이 떨어진다. 극단적이다.
5성급보다 값진 숙소, 홈스테이의 따뜻한 물 한 양동이
– 투박하지만 감사한 저녁의 시작
마카밸리 트레커들은 캠핑을 하거나 현지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한다. 숙소는 도착한 날의 저녁식사와 그다음 날의 아침식사, 점심 도시락을 제공한다. 시설이 열악하긴 하지만 나에겐 이곳이 5성급 호텔 부럽지 않았다.
홈스테이 주인아저씨는 양동이 1개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워 세수하고 손발을 씻을 수 있도록 했다. 아궁이에서 직접 물을 끓여서 준비한 것이라 감사한 마음으로 남김없이 야무지게 사용했다.
먼저 따뜻한 수프가 먼저 나왔다. 약간 엷은 강하지 않은 라면수프의 맛이었고 비아니 (인도네시아 스타일 볶음밥, 인도식 수제비)가 나왔는데 냄새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녹다운된 나는 입맛이 없었다.
밥도 못 먹은 남편, 손을 따다
– 낯선 땅에서의 작은 위기와 응급처치
남편은 배탈이 났는지 체했는지 저녁 생각이 없다며 방에서 쉬고 있겠다고 했다.
남편 두고 혼자 밥 먹기도 미안하고 너무 지쳐서 입맛도 별로 없고 하여 나도 조금만 먹고 남편에게 갔다. 남편은 배탈도 났고 체하기도 했다. 배탈 때문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한 남편. 아무래도 점심때 먹은 감자를 귀찮다고 껍질을 안 벗겨먹은 게 문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체한 건 아무래도 먹기 싫어하는 마요네즈샌드위치를 먹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남편은 손을 따야 낫는다고 했다. 나는 손을 따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다행히 홈스테이 하는 곳에 실과바늘이 있어서 빌려 손을 딸 수 있었다. 구급상자에 다행히 알코올솜이 있어서 소독할 수 있었다. 손 따기는 처음 해보는 거라 몇 번의 실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오른손 왼손 엄지를 모두 땄다! 남편은 좀 편해진 것 같다고 했다. 생명의 은인이라고 남편에게 으스대면서 손마사지도 같이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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