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5. 마지막날.
걷다보니 5,200m 정상이었다.
2019년 9월 13일 금요일.
니말링(4,800m)~콩마루 라(5,200m)~촉도(4,000m)
이동시간 : 8시간
이동거리 : 12.5km
눈 뜨자마자, 무릎이 시렸다
텐트 밖이 환해져서 자연스럽게 깨어났다.
음.. 컨디션이 나쁘진 않다. 무릎만 빼고.
처음엔 잘때 추워서 그런 줄 알았지만 내생각에는 전날 오르막길에서 혹사당한 무릎이 밤새 시려웠던것 같다. 자면서 무의식 중에 핫팩을 자꾸만 무릎에 갖다댔다.
4,800m 고도의 텐트 야영이라 걱정했지만 핫팩, 침낭, 두툼한 이불들 덕분에 잘 잤다. 다만 생수통 안에 넣은 물이 얼음물 수준으로 차가워진 것을 보며 이불 밖은 얼마나 추웠을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아침에 시원한 물을 마실수 있었다.
오늘의 아침식사는 콘프레이크와 짜파티이다. 콘프레이크를 먹다니 신기방기이다.
이곳은 시리얼을 먹을때 따뜻한 우유에 먹기도 한다. 레 시내에 사라이 호텔에서도 아침식사때 찬우유에 먹을지 따뜻한 우유에 먹을지 물어봤었다. 그때는 찬우유에 말아먹는것이 익숙한 우리는 찬우유에 먹었지만
이날은 아침은 따뜻한 우유에 말아 먹었다. 거기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시리얼에너지바도 같이 넣어서 먹으니 고소하고 든든했다. 혹시라도 배가고플까봐 걱정되서 짜파티를 보긴 했는데 손은 안 갔다.
'먹어야 하나?' 싶은 의무감만 잠깐 느끼고는 그냥 콘프레이크로 배 채웠다.
어제밤에 핫팩을 무려 7개 써서 가방이 이제 좀 가벼워졌다. 우리가 5개를 쓰고 포터와 가이드 1개씩을 주었다. 다들 써본적이 없다고 했는데 따뜻해서 좋았다고 한다.
양치를 하고 짐을 싸고 드디어 콩마루라 출발이다!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정상
콩마루 라까지 올라가는 길에 햇볕이 너무 강하니 해가 더 떠오르기 전에 지나려고 좀 더 일찍 출발했다. 니말링에서 2시간 정도 오르면 된다.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하진 않지만 높은 고도라 최대한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 출발전에 니말링의 멋진풍경과 파란하늘을 감상하며 잠시 여유를 즐겼다. 이제 마카밸리 트레킹도 오늘이면 끝이구나. 괜히 마음이 짠했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산맥과 광활한 들판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어찌나 넓은지 저 멀리 정상이 보이는데 아무리 걸어도 그 거리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정지 화면을 보는듯하게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눈앞에 언덕을 보았을때는 숨이차고 발이 천근만근이었지만 뒤를 돌아보면 환상적인 풍경이 위로를 해주었기에 나는 열심히 열심히 걸어 올라갔다.
사실 올라가기 전에는 가는 길이 밋밋해 보여서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생애 첫 5,000m 고도라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옆에 다른 트레커들도 울상이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당나귀를 타고 올라가기도 했다. 그는 이미 정신이 혼미한지 두 눈을 감고 몸을 휘청거렸다.
콩마루 라, 그곳은 작은 축제였다
끝이 보이는 마지막 언덕길을 올라갈때는 호흡이 마음처럼 잘 조절되지 않았다.
그래도 끝은 있었다. 마침내 트레킹의 최고 정점인 콩마루 라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올라온 길을 한눈에 쭉 볼 수 있고 앞으로 내려가야 할 풍경도 볼 수 있다. 이곳은 축제 분위기다. 서로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국적 성별을 불문하고 하나가 된 느낌에 마음이 벅찼다.
콩마루라에 오르니 지금까지 올라온 뷰와 앞으로 내려야야할 풍경이 교차되어 보였다.
하산예상시간은 5시간이라 정상에서 보이는 아래쪽은 까마득하였다. 나에게 보이는건 울퉁불퉁한 산맥의 꼭대기뿐이었다.
긴장감 100%, 하산은 쉽지 않다
이제 1,500m가량 내려가야 하는 긴 하산길이니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콩마루 라에서 촉도로 가는 하산 길은 생각보다 많이 위험했다. 바닥이 건조하고 모래가 많아서 미끄러웠고 낭떠러지 길을 지나가야 했다. 잘못 발을 디디면 가파른 언덕으로 쭉 미끄러지기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걸어야 했다. 그리고 저기 낭떠러지 아래에 당나귀로 보이는 뼈가 있었다. 뜨악...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미끄러져서 넘어진것 같다고 했다. 우리도 고생이지만 너희들에게도 쉽지 않은 길이구나 싶었다.
촉도에 도착해 미리 예약해 둔 택시를 타고 레로 다시 돌아갔다.
4박5일간의 마카밸리 트레킹은 문명과 떨어져 있어서 자연과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수 있는 고마운 시간이었다. 5일동안 함께 걸었던 건조하고 뜨거웠던 길.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순간들이 정말 오랜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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