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되지 않은 유럽

나폴레옹 이후, 인간에게 배선된 새로운 알고리즘.

by 미친생각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면서 유럽은 과거로 복원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프랑스에 점령당했던 국가들은 다시 원래의 질서로 돌아갔고, 왕과 귀족도 복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럽은 복원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제국의 지배 과정에서 경험한 새로운 질서, 즉 인간의 행동 방식을 바꾸는 알고리즘이 이미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는 유럽 대부분을 지배했습니다. 이 광범위한 지배는 과거 마케도니아 제국이나 로마 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강제적인 정보 확산을 동반한 사건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프랑스의 지배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하나의 집단이라는 사실, 즉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자각하게 됩니다. 동시에 그들은 법 앞의 평등과 능력 중심의 질서, 신분이 아닌 개인 단위의 사회 구조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새로운 알고리즘이 머릿속에 배선된 상태에서, 왕과 귀족이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외부의 지배를 거부하던 감정은, 이제 내부의 지배층을 향하기 시작합니다. 민족주의는 이렇게 확장된 것입니다. 반면 지배층은 빈 체제라는 질서를 통해 과거의 구조와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미 인간은 다른 기준을 배워버린 상태였습니다. 중세부터 잔존했던 신분 구조라는 정보가, 사람들의 뉴런에서 배척되고 있었습니다.


결국 1848년, 유럽 전역에서 피지배층은 민족주의와 제도 개혁을 요구하며 폭발합니다. 이 동시다발적인 혁명은 프랑스를 공화국으로 전환시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실패로 끝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 이후 유럽의 통치 방식은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왕은 더 이상 단순한 지배자가 아니라, 민족의 대표라는 정당성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민족주의는 제거된 것이 아니라, 통치의 언어로 흡수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나눠져있던 독일과 이탈리아는 하나의 국가로 통일됩니다. 하지만 이 통일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늦게 형성된 이 국가들은 영국과 프랑스 같은 선발 국가와의 격차를 빠르게 메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는 점점 더 공격적인 형태로 변해갑니다. 민족을 기준으로 한 결속은 곧 다른 민족에 대한 배척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긴장은 점점 고조됩니다. 유럽의 전운은 짙어지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