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산책, 시인 곁에 서다

by Vincent

숨막히는 도심을 벗어나 단숨에 숲속에 풍덩 빠질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멀리 가지 않아도 복잡한 머리를 식히며 몸에 무리 가지 않는 산책길이면 좋겠다. 북악산과 인왕산 자드락이면 꽤 괜찮을 듯하다.


백사실계곡부터 부암동 골목도 어슬렁대며 윤동주의 자취를 살피고, 무무대에서 한양을 한눈에 담아도 보고 수성동계곡으로 내려오는 길. 날씨가 변수이긴 하지만, 요즘 예보는 참조만 하면 될 것 같다. 다만 오늘 날씨는 시종일관 비가 온다고 했으니, 대비는 철저히 해야겠지.


예상대로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전철에 몸을 싣고 무거운 백팩을 안으며, 왜 매번 이렇게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지 자책해 본다. 모두 유사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고, 그게 작금의 대중교통에서 유일한 소통 창구다. 문득 학창 시절 전철의 객실 모습이 슬쩍 떠오르는 걸 보니 ‘나도 이제 나이가 드는구나’라고 인정하게 된다.


버스로 갈아타고 세검정 인근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가 그쳤다. 세검정을 비켜 흐르는 홍제천은 밤새 내린 비로 수량이 강폭을 충분히 채울 만큼 넉넉해졌고 옅은 옥빛을 띠고 있었다. 홍제천을 뒤로하고 현통사를 지나면서 든든한 암반 위에 암자처럼 올라앉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을 잠시 선망해 보았다. 어느새 도시의 소음은 사라지고 매미 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앞에 가고 있던 어떤 여성이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흥얼거린다. 그제야 산들바람이 내 몸을 시원하게 감싸주고 있음을 체감한다. 땀이 나려던 차에 이런 바람, 정말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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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의 고도를 조금씩 높여가다 보니 어느새 백사실계곡에 성큼 들어섰다. 이 계곡은 북악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세검정과 홍제천, 모래내를 지나 불광천과 합류해 한강으로 흘러드는 길목이다. 백석동천별서터에 이르렀다. 별서 터에는 추사 김정희가 매입하여 명성이 높아졌다는 한옥의 기둥과 기단으로 쓰였던 석재가 옛 형체 그대로 남아 지나온 세월을 보여준다. 옆에는 인공으로 만든 연못 터가 있는데, 오늘은 여기에도 물이 가득하다. 연못 가장자리에 정자 기둥으로 쓰였던 석재도 보인다. 소란스러운 행락보다는 주변을 유심히 살피며 역사적 의의를 찾는 듯한 사람들이 주로 이곳을 찾는 듯하다. 차분하고 고즈넉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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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깊은 이 자리에서 닻을 내리고 충분한 휴식과 함께 도시락을 즐겼다. 그러나 모든 게 다 좋을 수는 없는 것인지 느닷없이 달려드는 모기들에게 내 소중한 피 일부를 내어줘야 할 판이다. 여기가 모기들의 급식소인가? 그들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활발히 움직일 때는 달려들지 못하다가 가만히 있는 사람들을 철저히 노린다. 나도 배불리 먹었으니 그 정도 혈세(?)쯤이야 기꺼이 내어주리라. 하지만 물린 후의 가려움이 짜증스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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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를 충분히 보충하고 다시 길을 오르니, 해서체 정자로 반듯하게 '백석동천'이라고 새긴 바위가 나타난다. 백석은 흰 돌이 많다는 뜻, 동천은 신선이 노닐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란 의미를 담는다. 당시 사대부들 사이의 풍류와 맞물려, 명승지에서 자연과 풍경 감상을 기념하며 새겼을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풍경까지 누리게 되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다시 구불구불한 길을 걷다 보니 백사실계곡 초입 현통사 인근의 서민주택과는 달리 화려한 저택들이 눈에 띈다. ‘돈 없이는 이런 집 못 지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 웅장하면서도 개성 있는 저택들을 지나서 창의문까지 왔다. 한양도성의 네 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문이다. 맞은편에 윤동주문학관이 보인다.


오늘, 이곳에서 윤동주라는 민족시인을 새롭게 마주했다. 처음 길을 나설 때 생각했던 윤동주문학관과 여기를 떠날 때의 마음가짐은 사뭇 달라졌다. 대략 간추려보니 세 가지 정도 울림을 받은 것 같다.


첫째, 문학관 시설의 규모와 설치 배경이 강한 인상을 주었다. 이곳은 내가 지금껏 다녔던 여느 문학관 보다 그 규모가 소박하지만, 밀도 있게 구성되었다. 기능을 다한 상수도 가압장을 문학관으로 재탄생시킨 것이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는 아닐 것이다. 우리 민족정신을 강한 수압처럼 높이려는 의미와 의지 아닐까? 게다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우물은 그의 대표 작품인 ‘자화상’의 진정한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윤동주의 자기성찰과 겸허함이 고스란히 이 공간에 녹아 있는 것 같아 좋다.


둘째, 윤동주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보다는 그에 대한 나의 무지를 조금이나마 해소했다고 해야 올바른 표현이겠다. 해설하시는 분이 무거운 태블릿에 윤동주의 일어 과목 성적과 나머지 과목 성적을 비교하며 보여줄 때 소름이 돋았다(그의 일본어 관련 세 개 과목 성적은 40점대였고 나머지는 80점 이상이었다). 윤동주는 당시의 억압에 맞서 우리의 아픔을 시로 표현하며 저항한 민족시인이다. 그가 너무나 일찍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도, 그 장소가 후쿠오카 형무소였다는 사실도 오늘에서야 똑똑히 알았다. 부끄러웠다. 해설자가 몇몇 작품에 표현된 메시지와 감정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일러주시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뿐만 아닌 듣고 있던 관람객 모두의 표정에서 공감대를 느낄 수 있었다. 시대는 달라도 그와의 거리가 한결 가까워진 것 같아 좋았다.


셋째, 문학관 해설자의 열정과 진정성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그의 설명은 틀에 박힌 내래이션이 아니었고 마치 윤동주의 삶을 함께 살아왔던 가족처럼 그의 일대기와 작품에 스며든 작가의 내면을 거침없이 들려주었다. 무엇보다 관람자의 눈높이에 알맞은 수준의 전달력이 돋보였다. 그의 표정에는 우리가 꼭 알았으면 하는 것들을 소상히 전해주어야겠다는 신념만으로 가득 차 보였다. 소중한 문학관을 지키며 열정을 기울이고 있는 그를 보며 나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었다. 나도 저렇게 고상하게 늙어갔으면 좋겠다는 부러움과 희망이 함께 내면에서 꿈틀거렸다. 수없이 만났던 해설가 중에 이렇게 깊은 울림을 던지는 이는 처음이다. 윤동주의 시가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이유는, 그의 정신을 진심으로 품고 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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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을 나온 발길은 시인의 언덕을 들러 초소 책방을 지나 무무대로 향했다. ‘아무것도 없구나, 오직 아름다운 것만 있을 뿐’이란 뜻을 담고 있는 무무대. 여기서 보는 남산타워, 롯데월드타워를 비롯한 서촌의 주택가, 광화문부터 남으로 이어지는 스카이라인이 발아래서 가슴을 탁 트이게 해준다. 천상에 서 있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봤으면 하는 충동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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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수성동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입구에는 한양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된 돌다리, 기린교가 자리하며 계곡의 시작을 알린다.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이라는 이름답게, 무무대에서 여기까지 내려오는 길에 크고 작은 폭포들이 여러 번 눈길을 끌었다. 이곳은 겸재 정선의 <수성동>에도 등장하는 유서 깊은 장소다. 계곡 초입 바로 아래가 버스 종점이고, 오늘 산책도 여기가 종점이다. 그런데 인왕산 자락에서 내려온 관성 때문일까,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종점이 아닌 출발점처럼 느껴진다. 종점에 대한 나의 관점이 시작점으로 기울었다는 건 오늘 산책길이 꽤 쓸모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 아닐까.


오늘 서울 도심 속에 숨은 비경을 거닐며, 옛사람들의 풍류와 오늘의 풍경을 함께 바라보았다, 윤동주라는 인물에 조금 더 다가섰고, 시인의 내면을 읽어내는 해설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한 통찰을 얻었다. 이과의 사고에 근본을 두고 살아온 나이기에 오늘 같은 산책은 유난히 깊은 만족감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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