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 한 번 하려다 마음까지 닦고 돌아왔다.
주말에 동생 차를 타고 외출하다가
집 근처 주유소에서 주유를 했다.
그 김에 자동세차도 하기로 했다.
그 주유소는 예전에 세차를 맡긴 적이 있는데,
사장님의 강한 에너지와 거침없는 말투가 인상 깊었다.
오늘도 세차장 입구에서부터
그분의 기운이 느껴졌다.
자동세차기에 들어서자
사장님은 운전대를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
다른 주유소와 자기 세차기의 차별점이 무엇인지
숨 쉴 틈 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마치 오래 참아온 감정을 터뜨리듯
이야기를 쏟아냈다.
“오늘 아침 일찍 세차 좀 해달라는 전화를 받았어요.
단골 맞느냐고 물으니 아니라 해서 안 된다고 했더니,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 욕을 하더라구요!
기분이 너무 나빠서 차량 사진 찍어두고
경찰에 조회까지 했어요.
연락처도 알아내서 문자 보냈다니까요.”
그분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쏟아내다가
마지막엔 이렇게 덧붙였다.
"이렇게라도 이야기하고 나니 속이 좀 풀리네요."
세차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그분의 감정의 파도 속에 머물러야 했다.
빠져나올 틈이 없는 20분이었다.
주유소를 벗어나자
동생이 조용히 말했다.
“저 분은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그냥 규정을 정해두고 그대로 응대하면 될 일을
감정이 앞서서 싸움을 만드는 것 같아.”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손님이 욕을 했다고는 하지만,
지금 말투를 보니 먼저 언짢게 했을 수도 있겠다.
욕을 한 손님의 입장에서 얘기를 들어보면
상황은 또 달라지겠지...”
그 말을 하고 나니 문득 생각이 이어졌다.
우리는 종종 자기 입장에서만 상대를 해석하고,
그 시선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곤 한다.
다르게 한 번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에 잠시 멈춘 차 안에서
사장님의 분노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분의 거친 말투 뒤에는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이 알아주지 못한 서운함으로 바뀌고,
그 서운함이 분노로 변해버린 건 아닐까.
문득, 나 자신이 겹쳐 보였다.
나 역시 어떤 순간에는
감정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 감정에 휘말려 상대를 오해한 적이 있었다.
그분을 보며 알았다.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끊임없이 흔들리고 분노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분노는
상대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상하게 한다는 것도.
타인의 언행은 잠시 스쳐 지나가지만,
그때의 감정을 붙잡고 있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이다.
그래서 나는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려 한다.
'지금 화낼 일일까,
아니면 그냥 흘려보내도 괜찮은 일일까?'
그 짧은 질문 하나가
마음을 닦는 연습이 되고,
나를 조금 더 유연하고 부드럽게 만든다.
오늘의 세차는,
차가 아니라, 내 마음을 닦은 시간이 되었다.
* 사진출처(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