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하늘에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거야"
[CONTINUITY NOTE – 인정(人情)]
나는 흔히 ‘미신’이라 불리는 이야기들을 유난히 신경 쓰는 편이다.
종교를 묻는 질문에는 무교라고 답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를 ‘전래동화’를 믿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에 기반한 오래된 설화들이 내 일상에 자주 떠오르기 때문이다.
가령, ‘전화위복’.
복이 오기 전에는 항상 작은 화가 앞서온다는 말.
특히 사람을 통해 예상치 못한 수고로움을 겪을 때,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잡는다.
매장을 운영하다 보면 의외의 상황들을 마주한다.
한 번은 예상치 못한 손님으로 인해 불편한 상황이 생겼지만, 끝까지 웃으며 응대하려 애썼던 적이 있다.
그날 밤, 맹자의 말이 떠올랐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 반드시 먼저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고통을 주어 기국을 넓히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별일은 없었지만, 그날 나는 내게 주어진 작은 시험을 잘 통과했다고 믿고 싶었다.
며칠 전, 동대문에서 컨설팅을 마치고 걷던 길에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오셔서 택시를 잡아달라고 부탁하셨다.
목적지가 모호해 앱 호출은 어려웠고, 나는 뙤약볕 아래에서 한참을 택시를 잡아드리려 애썼다.
결국 할아버지는 버스를 타시겠다며 길을 가셨고, 나는 그제야 제 갈 길을 걸었다.
그 순간 문득 ‘진묵대사의 칠성 이야기’가 떠올랐다.
추레한 행색의 손님들로 인해 복을 놓친 부부의 설화.
할아버지에게 더 잘해드릴 수 있었던 건 아닐까, 괜히 마음이 찜찜해졌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할머니께서 길을 물어오셨다.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 마침 내가 지난주에 다녀왔던 곳이었다.
‘이건 하늘에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는 거야.’
나는 목적지까지 동행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원하시는 물건을 함께 고르고 구매까지 도와드렸다.
가게 주인께서 “손자분이 참 싹싹하네요”라고 웃으며 말하셨고,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순간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떠올랐다.
함께 장을 보던 기억, 나란히 걷던 기억들.
이렇게 마음이 따뜻했던 순간이 최근에 또 있었나 싶었다.
요즘은 이런 인정(人情)을 느낄 일이 잘 없다.
할머니가 하늘에서도 나를 생각해주시고 계신다는 생각과 함께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할머니, 실례가 되지 않으면 사진 한 장 찍어드려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