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할머니 손에 커온만큼, 할머니를 닮아가나 보다.
[CONTINUITY NOTE - 집]
나는 집에 누군가가 오는 걸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할머니도 그러셨다.
처음 살던 집에는 할머니 친구분도 오시고
할머니가 친구분 댁에 가시기도 하며 왕래가 많았다.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이사 첫날에는 할머니 친구분들을 모시고 와서 집들이 겸 식사대접도 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멀어진 탓에 왕래가 뜸해지며
할머니께서 집에 계시는 시간이 많아지셨다.
어느 날 내가 친구를 데려오면
일부러 불편해서 보내게끔 핀잔을 주시며
정말 안 좋아하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집에 누구를 데려오는 것이
잘못된 일인 줄 알았을 정도였다.
우리 할머니는 외부인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굉장히 신경쓰이는 시간이셨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서울로 상경해서
처음에는 고모집에서 지내다가
극단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숙소에서 지냈다.
극단 생활을 그만두고 커피업을 시작할 무렵
숙소에서 나와 처음으로 방을 얻었는데 반지하 원룸이었다.
처음 혼자 산다는 생각에 들떠
같이 일하던 동료 형들을 초대해 놀아보기도 했다.
반지하 원룸에서 지낼 때에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는 걸 참 좋아했다.
근처에서 한잔하고 나서도 2차로 갈 곳이 마땅치 않으면
내가 나서서 다 같이 우리 집에서 먹자고 할 정도였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든 생각은
당시 우리 집에 사람 냄새가 나면 좋겠어서였던 것 같다.
일하는 시간이 워낙 길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자고,
빛도 잘 들어오지 않고 좁아서
음식을 해먹기도 불편했던 곳이라
쉬는 날에도 항상 나가 있었다.
그래도 기분이 들뜨면
내가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나만의 공간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반지하 특성상 여름철 곰팡이 냄새와
수많은 벌레들의 등장으로 인해
지상으로 진출을 위해 월급을 차곡차곡 모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반지하 생활을 청산하고
지금도 지내고 있는 오피스텔로 이사 간 것이다.
깔끔한 화이트톤에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시티뷰,
너무 좋았던 나머지 SNS에
새로운 우리 집을 올리기도 하고
가족들한테 영상통화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소가 나오지만
열심히 잘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나만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집이 너무 좋아진 나머지
쉬는 날에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소파에 누워서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사색을 즐기는 것도 즐거웠다.
핸드폰이 아닌 TV화면으로
편하게 OTT를 보는 것도 즐거웠다.
그런데 지금 집에는 전과 다르게
집들이도, 초대도 단 한 번도 외부인을 들인 적이 없다.
더 넓고 좋아졌는데도 지금은 나서서 초대하지 않는다.
그렇게 자랑하고 싶은 우리 집인데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잠깐이지만 외부인으로 인해
신경쓰이고 불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 할머니도 이사하시고 나서
집이라는 공간만이
유일하게 마음 놓고 지내던 공간이었지 않았을까?
불쑥 예고 없이 찾아온 불편한 손님들이 머무는 시간이
우리 할머니의 여린 마음을
신경 쓰이게 만들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할머니 손에 커온 만큼
할머니를 닮아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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