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후기

영화 <얼굴>, 2025, 연상호

by 뭉콩경

영화 <얼굴>, <괴물> 결말, 스포일러 포함


타인의 말로 한 사람을 재단하는 순간, 우리 모두 눈먼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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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시각장애인 영규의 아들 동환이 40년 전 실종된 줄 알았던 어머니 '정영희'에 대한 진실을 현재 시점의 인터뷰를 통해 파헤쳐간다. 낯선 친척,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 등 다섯 차례의 인터뷰에 걸쳐 과거의 파편들이 맞춰지며 사건의 윤곽이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영화가 감춰놓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정영희'의 얼굴이다.


인터뷰가 계속될 때마다 '정영희의 얼굴은 못생겼다'는 낙인이 관객의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된다. 영화의 엔딩까지 단 한 번도 그녀의 얼굴이 직접 비추어지지 않지만, 영화에 몰입하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못생긴 이미지를 상상하고 있다. 오로지 인터뷰 증언자들의 말만이 우리의 상상을 지배한다.


엔딩에서 마침내 드러난 정영희의 얼굴은 괴물처럼 추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녀의 얼굴을 궁금해하며 나름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구축해 왔고, 사진이 공개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평가한다. 규칠의 말 한마디로 아내의 얼굴이 추하다고 판단한 시각장애인 영규처럼, 우리 역시 보지 못했지만 타인의 말을 통해 한 사람의 외모를 재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바로 이 엔딩 지점에서 영규와 관객을 겹쳐놓는다. 영규는 아내를 죽인 살인자다. 그가 아내를 죽인 이유는 그녀의 '못생긴 얼굴'때문이었다. 보지도 못한 얼굴을 타인의 말만 듣고 혐오하며 순간 살인에 이르렀다. 정영희는 평생 '못생긴 여자'라는 낙인 속에 살았고 그 낙인은 결국 목숨을 앗아갔다. 관객인 우리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낙인에 동참하게 된다. 보지도 않고 판단했고, 듣기만 하고 상상했으며, 마침내 공개된 얼굴을 평가했다. 영화가 다소 직접적으로 정영희의 얼굴을 철저히 감추고, 모든 증언자들이 한결같이 그녀를 못생겼다고 말하며, 우리를 강제로 편견의 공범으로 만드는 부분은 사실이나, 그 직접성이 오히려 엔딩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은 더욱 강렬해진다.


영화를 다 보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이 떠올랐다. 영화 <괴물>은 제목과 달리 진짜 '괴물'같은 악인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며 사실 존재하지 않는 '괴물'을 찾아 마녀사냥을 벌인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두 영화가 관객의 생각을 유도하는 방식은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르다. <얼굴>은 직접적이다. 영화 속 모든 인물이 정영희를 못생겼다고 말하고, 그 반복된 증언은 관객에게 의심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우리는 영화가 제시하는 정보에 수동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반면 <괴물>은 더 섬세하고 교활하다. 어머니의 시선에서, 교사의 시선에서, 아이의 시선에서. 같은 사건, 같은 장면이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렇게 <괴물>은 관객을 능동적인 공범으로 만든다.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영화가 선택한 시점에 의해 조종당하고 어떤 인물의 내면에 들어가 그의 감정을 따라가는 순간, 우리는 그의 편에 서서 다른 누군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얼굴>, <괴물> 모두 우리 안의 편견을 직면하게 한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어버리는지. 정영희는 괴물처럼 못생기지 않았고, 우리가 본 40년 전 과거의 장면들 또한 누군가의 단편적인 시선일 뿐이다. 나는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보지도 않고 판단하고, 듣기만 하고 규정하며,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로 타인을 가두는지. 영화 <얼굴>은 그 질문 앞에 우리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