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후기

영화 <리틀 포레스트>, 2018, 임순례

by 뭉콩경

영화 <리틀 포레스트> 결말, 스포일러 포함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 충분한 순간이 있다.



<리틀 포레스트>는 평화로운 배경음악과 혜원의 나지막한 내레이션, 그리고 미성리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좇는 트래킹 쇼트로 시작한다. 이 오프닝을 따라 관객은 자연스럽게 혜원의 이야기 속으로 이끌린다.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을 지나 봄으로. 영화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롱쇼트를 통해 미성리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낸다. 그 프레임 안에는 마당을 뛰노는 강아지, 바람에 흩날리는 꽃과 나무가 있고, 혜원 역시 그 자연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자리한다.


혜원이 처음부터 귀향을 결심하고 뿌리내릴 각오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미성리는 도시의 압박과 억압으로부터 도망치듯 떠밀려 내려온 피난처였다. 하지만 계절이 흐르며 미성리는 단순한 임시 도피처를 넘어, 혜원을 품고 혜원이 뿌리내리는 진짜 공간으로 변모한다. 영화는 이 변화를 말이 아닌 이미지로 섬세하게 보여준다.


일본 원작과 차별화되는 임순례 감독 <리틀 포레스트>만의 매력은 혜원의 친구 재하와 은숙의 비중이다. 세 사람은 언제나 같은 프레임 안에 함께 담긴다. 혜원의 집에서 직접 빚은 막걸리를 나누며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카메라는 누군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지 않는다. 그저 작은 방 안,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세 친구를 한 프레임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프레임 가득 채운 이들의 모습은 음식과 추억을 나누는 우정의 온기를 직접적으로 전한다. 자연이 그 자체로 편안함을 주듯,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행복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리틀 포레스트>가 시골 생황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포장했다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영화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감독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다. 영화 초반 도시는 창문 하나 보이지 않고 형광등 불빛만 남은 듯 어둡고 칙칙하게 그려진다. 이것만 보면 도시와 시골의 이분법적 대비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후반부 혜원이 다시 도시로 올라갔을 때의 장면을 주목해 보면 같은 도시임에도 이번엔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미성리의 계절을 담아내듯 도시의 풍경 역시 생기롭게 포착된다. 이 대비는 공간의 본질적 차이가 아니라 혜원의 내면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다. 초반의 어두운 도시와 집은 지친 혜원의 시선으로 본 세계였고, 후반의 밝은 도시는 미성리에서 회복한 혜원의 시선으로 본 같은 세계다. 영화는 시골로의 탈출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든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혜원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며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쉼표 없이 길게 이어진 복잡한 문장 같은 삶에서 잠시 한 발짝 물러나 여유를 찾아보라고.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는 혜원의 대사는 단순한 독백이 아니라, 영화가 관객에게 건네는 질문이다. 혜원에게 리틀 포레스트는 미성리와 자연이었다. 중요한 것은 '작은 숲'이라는 공간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서 찾은 '쉼'의 의미다. 그것은 공간일 수도, 취미일 수도, 사람일 수도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나를 잠시 멈춰 세우고, 다시 걸어갈 힘을 주는 무언가라면 그것이 바로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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