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2023, 빔 벤더스
주인공 히라야마의 하루는 분명 반복이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이불을 개고 면도를 하고 화분에 물을 준다.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고 밴에 올라타 카세트테이프를 넣으면 그날의 올드팝이 흘러나온다. 일은 더욱 반복적이다. 같은 루트로 도쿄의 공중화장실들을 돌며 청소한다. 점심에는 카메라로 코모레비를 찍고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퇴근 후엔 목욕탕에 들러 몸을 씻고, 단골 가게에서 저녁을 먹는다. 집에 돌아와서는 책을 읽다 잠든다. 내일도, 모레도. 권태로 가득할 것 같지만, 히라야마는 전혀 권태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의 얼굴에는 지루함 대신 고요한 만족이 깃들어 보인다. 반복이 그를 무디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삶을 선명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히라야마는 반복 속에서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듣는 노래는 그날의 기분과 빛에 따라 감흥이 달라지고, 숲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코모레비의 이미지는 비슷하면서도 매번 다르다. 그는 반복 속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매 순간의 고유함을 감각하며 행복을 누리며 살아간다. 그의 행복은 화려하지 않다. 좋아하는 올드팝과 함께하는 출근, 목욕탕에서의 느긋한 시간, 단골 선술집에서의 저녁. 이런 소소한 것들이 그의 하루를 채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냐다. 그가 매일같이 찍는 코모레비는 누군가에게 무의미한 행위일 수 있지만 그에게는 오늘의 빛을 기록하는 의식이다. 같은 나무라도 오늘의 빛은 어제와 다르다. 그는 그걸 안다. 그래서 행복하다. 행복이란 무엇을 더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아닐까?
히라야마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영화는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여동생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 그에게 과거에 다른 삶이 있었으리라는 단서를 던진다. 부유했을지도 모를 집안, 버렸거나 버림받았을 관계들. 하지만 그는 이 삶을 선택했고, 이 하루하루를 지키려 한다. 우리는 보통 더 나은 하루, 어제보다 더 완벽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히라야마는 그 반대다. 변화를 쫓지 않는다. 그에게 완벽한 하루란 새로운 무언가를 성취하는 날이 아니라, 익숙한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는 날이다. 그래서 그는 일상을 무너뜨리는 균열을 경계하고 자신의 루틴을 지키려 한다. 갑작스럽게 조카가 찾아왔을 때, 동료 타카시가 그만두었을 때, 선술집 여주인이 낯선 남자와 포옹하는 장면을 보았을 때. 이 모든 것들은 히라야마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러한 균열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조카를 내쫓지 않고, 타카시를 원망하지 않고, 선술집 주인 마마를 멀리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흔들리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휩쓸리지 않으려 할 뿐이다. 완벽한 하루를 지키려 애쓰는 사람도 결국은 안다. 균열 없는 삶은 없다는 것을. 사람은 떠나고, 관계는 변하고, 예상치 못한 것들이 찾아온다는 것을. 엔딩에서 미소와 눈물이 동시에 흐르는 히라야마의 표정은 그 모든 사실을 받아들인 얼굴처럼 보인다.
<퍼펙트 데이즈>는 결국 하루에 관한 영화다. 거창한 서사나 극적인 반전 없이, 그저 한 사람의 하루가 조용히 흘러간다. 하지만 그 하루 속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권태와 행복, 고독과 연결, 반복과 변화, 그 모든 것들이 특별한 사건 없이도 성립된다는 점이다. 히라야마의 하루에는 갈등을 해결하는 사건도 어떤 결단도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하루가 끝나고 다시 하루가 시작될 뿐이다. 그러한 단순함과 여백 속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우리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매일을 다음을 위한 준비로만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아직 오지 않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견디고만 있지는 않은가. 히라야마는 오늘을 살고 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도, 어제를 후회하며 오늘을 흐리지도 않는다. 그에게 하루는 견뎌야 할 시간이 아니라, 온전히 머물러야 할 시간이다. 그래서 그의 하루는 조용하지만 충만하고 가득 차있다. 같은 하루일지라도, 같은 빛은 없다는 것.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오늘만의 온도와 리듬이 존재한다는 것. 그렇게 각각의 날이 그 자체로 완전하고 고유하기에 '퍼펙트 데이즈'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