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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기술이 필요한 연습이다

기억의 역설: 소비하지 말고, 편집하자

by Itz토퍼

하루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우리는 쉼 없이 무언가를 경험한다. 사람마다 수고하고 노력하며 추구하는 방식은 제각각 다르다. 하지만 그 발걸음의 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가 결국 하나의 종착지를 향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나침반처럼 쫓는 단 하나의 방향은 바로 '행복'.


행복은 단순히 찰나의 즐거움이 아니다. 그것은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하는 정서적 보금자리이자, 내일을 향해 나아가게 만드는 생의 가장 강력한 동력일 것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행복을 갈망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그 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행복이 결핍되었을 때 삶의 의미가 얼마나 쉽게 무너져 내리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장애 요소가 있음을 발견케 된다. 그 간절한 바람과 달리, 우리의 ‘기억’은 온전히 우리 편이 아니라는 사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경험을 쌓아간다 한들, 그것을 ‘뇌’라는 메모리카드에 온전히 담아두지 못하면 행복했던 순간도 그 빛을 잃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기억은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가슴에 박히고, 어떤 기억은 아침 안개처럼 손가락 사이로 허무하게 빠져나간다. 기억이 공평할 것이라 믿고 싶지만, 사실 기억은 지독하게 편파적이다. 잊고 싶은 상처는 부르지 않아도 선명한 8K 영상처럼 눈앞을 찾아온다. 반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행복의 순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빛바랜 사진처럼 흐릿해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하는 ‘기억의 역설’이다.


본능의 설계: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정성 편향’이라 부른다. 우리는 긍정적인 자극보다 부정적인 자극에 더 강하게 반응하고, 이를 더 오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을 겪을 때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성격 탓이라며 자책하곤 한다. 이게 모두 개인의 결함일까. 아니다. 우리 뇌가 가진 구조적 특성에서 기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뇌의 편도체가 즉각 활성화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해마의 기억 저장 과정이 강력하게 강화된다. 감정적으로 강렬한 부정적 사건일수록 장기기억으로 고정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식적으로 조절하지 않는 한, 기억의 저울은 자연스럽게 ‘부정’의 무게 쪽으로 기운다.


지워지지 않는 얼룩, 상처의 선명함


오늘 하루 백 번의 칭찬을 들었어도, 퇴근길에 마주친 단 한 마디의 비난은 하루의 모든 기억을 덮어버린다. 그리고 이 비난은 결국 밤잠을 설치게 만든다. 10년 전 이불속에서 하이킥을 하게 만들었던 서툰 실수는 마치 오늘 아침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왜 우리는 이토록 고통에 취약하며,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될 아픔을 이토록 질기게 붙들고 사는 것일까. 정말 내 성격이 유난스러운 탓일까?


인지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인 경험 하나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몇 배나 더 많은 긍정적인 자극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만큼 부정적 자극의 심리적 무게는 압도적이다. 더 큰 문제는 ‘반추(Rumination)’라는 인지 습관이다.


상처를 해결하기 위해 그 일을 떠올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고통스러운 장면을 반복 재생하며 뇌에 다시 학습시키는 과정이다. 이 되새김질 속에서 기억은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게 재각인된다.


우리는 상처를 그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복습’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게 성격 탓이라고 자신을 탓한다. 하지만 이 모든 현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사시대 인류에게 달콤한 열매의 기억보다 포식자에게 쫓겼던 공포의 기억이 생존에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상처가 선명하게 남는 것은 우리 몸이 보내는 처절한 생존 신호다. “다시는 이런 위험에 처하지 마라”는 경고인 셈이다. 그러므로 상처의 선명함은 당신의 나약함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애써온 설계의 흔적이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 행복을 먼저 지우는 무심함


반면, 우리를 웃게 했던 수많은 찰나의 순간들은 너무나 쉽게 지워진다. 마치 우리 뇌 속에 성능 좋은 '지우개'라도 들어 있는 것만 같다. 슬프게도 이 지우개는 지독히도 편파적이라는 사실. 고통스러운 기억은 교묘하게 피해 가면서 따스하고 행복했던 기억들만 골라 먼저 지워버리곤 한다.

by ChatGPT+Grok+Ezgif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었던 따뜻한 눈빛, 코끝을 스치던 봄바람의 감촉, 목표를 이루었을 때의 전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우개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그 뜨거웠던 사랑의 순간마저도.


행복은 생존에 즉각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뇌는 이를 굳이 에너지를 써가며 고강도 저장 장치에 보관하려 하지 않는다.


여기에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는 현상까지 가세한다. 인간은 긍정적인 변화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적응한다. 승진도, 성취도,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일상'이 된다. 뇌의 지우개는 이제 익숙해진 행복을 ‘불필요한 정보’로 분류하고 서서히 지워나간다. 또한 평온한 행복은 공포나 분노처럼 각성 수준이 높지 않다. 기억의 표면에 얕게 새겨졌다가 이내 사라지기 일쑤인 이유다.


다시 강조하지만, 행복한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은 결코 당신의 성격 탓이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단지 우리 뇌의 본능적 저장 방식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서글픈 현상은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진실을 일깨운다.


“행복은 가만히 있어도 축적되는 결과물이 아니다. 지우개의 손길이 닿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붙잡고 덧칠해야 하는 ‘기술’이다.”


행복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 기술이다


기억의 역설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의도적인 '반복'과 '기록'이다. 상처는 가만히 두어도 스스로 뿌리를 내린다. 하지만 행복은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마치 작은 화분처럼 직접 물을 주고 햇볕을 쪼여야만 겨우 자라나는 식물과도 같다.


뇌에는 ‘가소성’이라는 유연한 특성이 있다. 반복적으로 떠올리고 주의를 기울이는 경험은 해당 신경 회로를 강화한다. 감사 일기를 쓰거나 즐거웠던 순간을 음미하며 그 의미를 되새겨보자.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이와의 행복한 순간을 기념일로 정해서 그날을 붙들어 두도록 하라. 그러면 그 사랑과 행복이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감성 훈련이 아니다. 지우개에 대항하여 행복의 선을 더 굵고 진하게 덧칠하는 뇌과학적인 작업이다.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 상처를 선택하지만, 우리 마음은 성장을 위해 행복을 선택해야 한다. 행복은 타고나는 기질이 아니다. 주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단단해지는 신경학적 습관인 셈이다.


에필로그: 기억의 주인이 되는 법


상처가 기억의 주도권을 잡게 내버려 두지 말자. 선명한 아픔이 당신을 찾아올 때, 그것은 당신이 못나서가 아니다. 생존 본능이 성실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상처로부터 한 걸음 물러설 수 있는 여유를 얻는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담는 창고가 아니다. 우리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저장하지 않고, 현재의 감정과 해석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한다. 결국 기억은 ‘저장’이 아니라 ‘편집’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나는 내 기억을 무력하게 소비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능동적으로 편집하는 존재인가.”


이제는 머릿속 지우개가 채 지우지 못한 행복의 조각들을 정성스럽게 이어 붙일 시간이다. 행복은 타고나는 운이 아니라, 매일의 연습을 통해 숙련되는 기술이다. 오늘 당신의 기억 창고에 어떤 색깔의 장면을 더 선명하게 남길지는, 결국 당신의 의지와 손끝에 달려 있다.




♣ '기억의 역설'을 끝으로 역설의 미학에 관한 브런치북 '우리는 왜 거꾸로 사느냐'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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