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결제플랫폼의 사회적 비용

시장은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선의와 사명감 만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by HJ

도로, 통신, 수도, 전기 등 사회 간접 자본과 공공 인프라는 장기간 방대한 자본 투자가 필요하며 민간이 독점할 경우 일부 폐해가 우려되기 때문에, 정부가 공급자로서 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수익성이 없지만 국민의 복지와 사회 안전을 위해 필요한 서비스 역시 정부가 공급한다. 이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정부는 시장의 직접 참여자가 아니라, 관리자 혹은 감독자로서 시장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작동하는지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규제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제로페이는 매우 독특한 형태의 시장 참여다. 민간 기업 만으로 이미 포화 상태인 지급결제 시장에 지방자치단체가 또 하나의 공급자로서 경쟁에 직접 참여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지급결제 사업자는 가맹점 모집과 관리, 결제 승인 및 한도 관리, 대금 청구와 회수, 전산 시스템 운영, 상품 개발 및 부가 서비스 제공에 비용을 소진하며, 그 반대 급부로 가맹점 수수료를 받는다. 그런데 제로페이는 사업자가 수수료를 받지 않고 지급결제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한다는 발상에서 탄생하였다. 애초부터 시장 원리에 반하며 논리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가 아니라는 시각이 많았다.


서울시는 공무원에게 제로페이 가맹점 모집을 할당하고, 제로페이 담당관 신설과 유료 광고 실시, 공무원 복지포인트와 업무추진비의 제로페이 사용 의무화 등, 논란을 무릅쓰고 이용 규모 확산에 매진했다. 그 결과는 어떨까? 최근 제로페이 결제액이 5천억원을 돌파했다고 하지만 월간 이용금액이 아닌, 출범 후 약 19개월간의 총 누적 이용금액이다. 물론 공무원들의 자체적인 제로페이 결제액까지 모두 합산한 수치다.


국내 신용카드사의 월간 결제액이 약 76조원(2020년 6월 기준, 현금서비스 제외)임을 감안할 때, 제로페이의 평균 점유율은 0.04% 미만으로 비교가 무색한 상황이다. 반면 지금까지 제로페이 홍보와 운영, 가맹점 모집 등에 사용된 예산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에 비해 이용이 불편하고 소비자 혜택과 서비스가 적으며, 사용 가능한 가맹점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성과는 예견된 것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주요 지자체 별로 출시하고 있는 공공 배달앱 역시 제로페이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이른바 “승자 독식” 경향이 강한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격상 국내 배달앱은 극소수 사업자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는 정부의 선제적인 독과점 규제와 제도 마련, 후발 신생업체 지원을 통한 경쟁 촉진 등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일부 지자체는 이미 압도적 우위에 있는 기존 업체와 경쟁하기 위해 배달앱 시장에 직접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공공 배달앱 역시 앱 개발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배달 음식점 모집과 관리, 시스템 운영, 마케팅과 서비스 개발 등에 고정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여기에 결제 수수료도 거의 받지 않는다고 하니, 결국 세금으로 운영되는 셈이다.


시장은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선의와 사명감 만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전문성과 업계 경험이 없는 지자체가 이미 포화 상태인 결제 플랫폼 시장에 직접 뛰어들었다가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되면, 그 실패의 대가는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으로 귀결된다. 더 늦기 전에 객관적인 손익 분석과 투명한 실적 공개, 그리고 전문가와 사용자의 의견 수렴을 통해 지자체가 주도하는 결제 플랫폼 사업의 지속 여부를 냉정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