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는 독점하지 않고 공유할수록 가치가 커진다
경제학자 Paul A. David에 따르면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은 ‘일정한 방식에 대한 의존이 고착화 되면 그 보다 효율적인 대안이 나오더라도 기존의 것을 표준으로 유지하는 경향’을 뜻한다. 경로 의존성의 대표적인 사례가 컴퓨터 키보드의 자판 배열인데,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이른바 “QWERTY” 자판의 원형은 과거 타자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타자기 안에서 글자를 찍는 얇은 막대들이 서로 엉키지 않도록, 연속해서 쓰일 만한 글자들을 서로 멀리 배치한 것이 현재의 형태로 굳어진 것이다. 물론 지금의 컴퓨터 자판은 그러한 필요성이 전혀 없음에도 여전히 과거 타자기의 배열을 유지하고 있다. 기존의 관성을 바꾸고자 할 때 발생하는 불편을 회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에도 이러한 경로 의존성이 존재한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법과 데이터의 처리 및 보안 관련 기술은 꾸준히 발전해 왔지만, 대다수의 조직이 데이터를 사용하는 방식은 실상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데이터의 분석과 활용에 있어서 보다 새롭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어도 변화를 원하지 않는 내부의 관성 뿐 아니라, 관련 환경과 제도의 실질적 개선이 답보 상태이기 때문에 기존의 분석 방식을 답습하는 경로 의존성이 발생한다. 또 사회 곳곳에서 데이터가 가지고 있는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하지 않은 것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유무형의 자산 중 시간이 경과해도 그 본원적 가치가 저하되거나 훼손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자산이 바로 데이터이다. 제품과 장비, 시설은 노후화되고 신기술과 핵심 경쟁력의 가치는 결국 감소하거나 소멸되기 마련이지만, 조직이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얼만큼 제대로 데이터를 분석하여 의사 결정과 미래 예측에 잘 활용할 수 있는가이다.
실제 데이터 분석을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최적의 의사 결정을 지원할 수 있는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빅데이터 분석을 상대적으로 활발히 하고 있는 금융과 통신 산업 외에도, 기상과 재해/재난 예측, 전염병 감염 경로 예측, 교통 정체 및 운송/물류 예측, 상권 변화와 부동산 가격 예측, 지역별 유동 인구와 전출입 예측 등을 통해 최적의 의사 결정과 행정 서비스의 질적 개선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개인별 질병 발병 확률과 기대 수명 예측, 또 상황별 범죄 발생 예측에서 스포츠 전략 시뮬레이션에 이르기까지 데이터 분석을 통한 미래 예측의 적용 분야는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데이터 분석의 사회적 순기능은 정보에 기반한 과학적 의사 결정과 정교한 미래 예측을 통해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자산에 가까운 공공 데이터의 공유와 활용에 대한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기관은 물론 기업 간에도 여전히 많은 데이터가 개인 정보라는 이유로 자료 공개가 거부되거나 실질적 공유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개개인을 식별 할 수 없는 데이터를 무리한 가정과 셈법을 들어 사실상 사용을 제한하거나, 단순 통계 분석 결과까지 개인 정보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개인의 Privacy에 대한 침해가 없는 한 순기능이 명확한 데이터는 적극적인 공유를 통해 사회적 자산화를 해야하며, 오히려 가치가 있는 데이터를 특정 단체나 기관이 독점하는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철저한 정보 보호의 원칙 하에 기업 간은 물론 다양한 이종 산업 간의 데이터 공유와 결합 분석을 통해, 사회 각 분야에서 여전히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못하는 데이터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창출과 혁신, 그리고 시장 확대와 고용 창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업의 투자와 분석 전문가 육성, 그리고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과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