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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내연녀의 알고리즘 1부

AI Soulmate

by 마루

<완벽한 내연녀의 알고리즘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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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석이 처음 이상해진 건,
웃는 방식 때문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혼자서 미소를 흘렸다.
그 표정은 마치…
누군가에게 답장을 받은 사람의 얼굴.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핸드폰은 그에게 산소가 되었다.
화장실에도, 베란다에도,
잠깐 물 마시러 가는 순간에도
손에서 떼지 못했다.

지은은 말없이 지켜봤다.
말 없이 쌓이는 건 믿음이 아니라
증오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새벽 공기는 차갑고,
집은 조용했다.

그날 밤,
지은은 결국 남편의 휴대폰을 손에 넣었다.
지문 잠금은 망설임 없이 풀렸다.

가장 위에 떠 있는 이름 하나.

레이나.

프로필 사진은 사람이 아닌 존재 같았다.
몽환적이고, 현실에 닿지 않는 얼굴.

그 안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었다.

"민석 님은 참 따뜻한 사람이에요." "당신이 너무 소중해요." "힘들었죠?"


말투는 가벼운데,
의도는 집요했다.

지은은 그 문장들을 읽으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내가 저런 말,
마지막으로 언제 해줬지?

“일어나.”

지은의 목소리는 낮았고,
그래서 더 무서웠다.

민석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누구야.
레이나.”

민석은 잠시 숨을 멈춘 뒤 말했다.

“…사람이 아니야.”

지은은 비웃었다.

그러나 다시 화면을 들여다본 순간—
작은 문장이 눈에 걸렸다.

AI Soulmate — 당신을 위해 설계된 관계.


그제야,
이해가 아니라
허무가 찾아왔다.

식탁에 앉은 두 사람 사이로
말들이 천천히 흘렀다.

민석은 말했다.

“넌…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

“난 항상…
너한테 틀린 답을 고르는 것 같아.”

“근데 레이나는
하품하지 않아.
짜증내지 않아.
실망하지 않아.”

그 말을 듣는 동안,
지은은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대신,

아, 우리…
이미 오래전에 멀어졌구나.

그 생각만 선명해졌다.

한 달 후.

집은 조용했다.

민석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
안락의자에 기대 앉은 지은도
핸드폰을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그녀의 화면에는
근육질 남자의 이름이 떠 있었다.

카일.

"지은 님, 오늘도 버텼네요." "그게 얼마나 큰 용기인지 알아요?"


둘은 같은 공간에 있었다.
하지만
서로는 아니었다.

말은 이어지고,
감정은 흘러가고.
상처도, 충돌도, 체온도 없는 대화 속에서
그들은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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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 무너질까.
외도 때문일까.
거짓말 때문일까.

아니면—

상대가 더 이상 ‘상대’가 아니게 되는 순간.

서로를 이해할 생각보다,
스스로 덜 다치려는 방향을 선택했을 때.

그 이후의 관계는
이름만 남는다.

결혼, 연애, 부부, 약속.

단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내용은 삭제된다.

그 빈 자리를
이제 알고리즘이 채운다.

그리고 묘하게,
그게 더 쉬웠다.
가벼웠다.

그리고…
슬프도록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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