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중독
누구나 상상의 나래를 펼 쳐 본 적 있지 않은가. 갑자기 친구가 했던 웃긴 말이 떠올라서 피식거리다가도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하며 현타가 온다. ADHD인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셀프로 진단했다. 일을 하다가도 순간 다른 생각이 들면 그 길로 가고 또다시 돌아오고를 반복한다. 여기서 '나래'는 '날개'라는 의미를 뜻한다고 한다. 날개가 항시적으로 꼬물대고 있는 것이다. 한번 제대로 펼치면 현실의 시간과 공간이 무뎌지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상상의 나라의 천사였을까. 항상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산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상상을 하고 있을 때도 있고 작정하고 상상을 할 때도 있다. 고도의 상상은 멍 때리는 것과 비슷하다. 상상을 하다 보면 맹~한 순간이 온다. "현실을 살아, 씹덕아"는 나에게 하는 말 같다. 온전히 보이는 것에만 집중해서 현타 올 일 없게 현실에서 살고 싶다.
초등학생 때 그림을 그릴 때면 상상은 필수적이어야 한다. 상상이 없으면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고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면 상을 못 타기 때문이다. 상상력으로 상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저학년까지는 그림을 잘 그리지 않고 창의적으로만 그리면 상을 탈 수 있다. 그런데 고학년들은 그림도 잘 그려야 한다. 고학년이 되어도 그림은 못 그릴 수 있다(나). 아무리 머리로 상상을 해도 그림으로 이쁘게 안 나오면 보기 싫은 그림이 된다. 그리면서도 그리기 싫고 상상도 멈춰버린다. 그렇게 포기해 버린 대회만 몇십 개다. 왜 상에 집착을 하는가. 상을 타지 못하면 쓸모없는 상상을 한 느낌이다. 누가 내 상상력을 인정해 주는 것인가. 담임 선생님인가, 미술 선생님인가, 교장선생님인가. 선생님이 인정한 상상력만이 쓸모 있는 상상력인가. 그림을 잘 그리면 상상을 엔간히 해서 대회에 나갈 수 있다. 근데 상상만 할 수 있으면 나같이 상상만 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상상에도 물론 좋은 기능이 있다. 먼저, 시간을 죽일 수 있다. 심심할 때나 기다릴 때 그냥 상상하는 것이다. 주제는 원하는 대로 정한다. 주변에 길이 있다면 여기서 누워 있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라든가. 강아지가 지나가면 물리는 상상 한번 해보고 길고양이가 있다면 데려가서 키우는 상상도 해본다.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썸을 타고 있으면 끝장이다. 하루 종일 썸남(여)을 생각하며 연애하고 결혼하고 자식도 낳고 늙어서 뭐 하고 있을지까지 생각하면 하루가 다간다.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애인에게 빠져 있을 때면 온 세상은 그 사람으로 물들어 버린다. 내 하루가 그 사람으로 가득 차 없어지다 보면 점점 현실이 없어지는 기분이다. 이 부분은 또 다른 영역일 수도 있지만 상상에 있어서 사랑을 빼놓을 수가 없다.
두 번째로 현실 도피가 가능하다. 현재 있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무언갈 하기 싫을 때 어딜 가지 않고 그냥 상상하러 가는 것이다. 시험기간일 때는 시험 끝나고 무얼 하러 갈지, 뭘 해야 재밌을지 생각하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거들도 막 떠오른다. 공부하다가 힘들 때면 누워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행복회로를 돌려본다.
세 번째는 미래의 최악을 미리 예상할 수 있다. 무슨 일이 생겼거나 고민이 있을 때 머릿속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저절로 재생된다. 괴로운 일이지만, 이를 활용해서 미리 마음을 단단하게 먹을 수도 있다. 알바를 했을 적 실수를 했을 때 사장님이 하실 말과 행동, 알바에 잘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상상을 한다. 이후 실제로 사장님한테 혼나면 생각보다 덜 혼내시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타격감이 줄어든다.
네 번째는 행복하다. 상상은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랑을 상상할 때만큼 행복한 것이 없다. 상상만으로도 사람 바보 하나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미래의 나를 상상할 적에는 나의 추구미가 무엇이고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진로를 생각할 때도 어떤 일을 하면 재밌고 멋있을 것 같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 중 하나는 인간은 상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상상은 불안을 키운다. 동물은 반복되는 상황의 예측은 할 수 있어도 인간만큼 자세하게 할 순 없다. 특히 나 같은 초예민 섬세 민감자에게는 더더욱. 동물은 현재를 살고 인간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한다. 인간의 이 상상력과 불안 덕분에 세계는 빠르게 진화해 왔다. 하지만 지나친 상상과 그로 인한 불안들로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다. 가끔은 힘을 툭 빼고 동물처럼 생각해 보자. 현실을 객관적으로만 보는 것이다. '그럴지도 몰라', '~할 것 같은데' 같은 확실하지 않고 잘 모르겠는 것은 전부 내가 만들어 낸 불안이라고 묶어버리자. 그러고 현실이 닥치면 '아 이렇게 됐구나 ㅈ됐네' 하며 내가 ㅈ된 사실을 받아들여보자.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이때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같은 자책은 하지 말자. 이렇게 돼도 '괜찮다', '그렇구나'라고 자기 자신을 위로해 주자. 금명이가 말한 것처럼 산사람은 다 산다.
집중해서 일을 해야 할 때는 상상이 위험하다. 한번 재밌는 것이 발동되면 신나서 상상하느라 집중력이 저하되고 일상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자주 발동되는 상상력으로 인해 현재를 사는데 방해를 받고 있다면 다음과 같이 상상을 다루어 보자.
1. 운동을 한다
현실 감각을 키우는 것이 상상에서 나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수영을 하고 있으면 감각을 현실에 집중시키고 다른 생각이 안 나게 한다. 물의 저항성, 숨쉬기, 속도, 발차기, 앞사람과의 거리 등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면 상상할 틈이 없다. 떠오른다면 그건 덜 힘든 거다. 힘들면 힘들어 죽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수영은 하고 나서가 가장 기분 좋은 것 같다. 정신이 또렷해지고 생산적인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가끔은 지쳐서 잠이 오지만 이 또한 잡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다.
2. 명상을 한다
시야를 차단하고 의식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숨소리에만 집중해 보는 것이다. 다른 생각이 들 때면 다시 돌아오는 연습을 한다면 상상 속에 빠졌을 때 좀 더 쉽게 돌아올 수 있다. 유튜브에 명상영상에서는 생각이 딴 길로 샜을 때 '아 내가 딴 길로 샜구나' 하며 의식하고 다시 숨소리에만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3. 글을 써본다
끊임없이 상상을 많이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뭐가 불안하고 걱정되는지를 일기나 글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머리에 있는 생각을 밖으로 꺼내서 보려고 한다. 불안이 눈으로 보이면 머릿속이 정리가 되고 왜 힘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작동하는 굴레를 딱 끊어주는 것이다. 상상이 꼬리의 꼬리를 물지 않도록.
4. 정해진 시간에만 상상한다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이거나 집중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상상을 뒤로 미루는 것이다. 친구가 추천해 준 방법이다. "샤워시간에만 걱정하기로 하는 거야. 막상 샤워시간이 오면 걱정이 안 떠오르더라고" 상상에도 적용되는 방법이다. 계속 잡상상들이 머릿속에 들어와도 이따가 몰아서 해야지라고 넘겨야 한다. 그러면 상상 속에서 조금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상상은 좋은 의미로는 '설렘'을 뜻하고 나쁜 의미로는 '불안'을 뜻하는 말인 것 같다.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들을 손으로 잡거나 구겨서 휴지통에 버릴 수는 없어도 떠오르는 것들을 무시하고 현실로 복귀하려는 연습이 필요하다. 뭐든지 너무 과하면 안 좋듯이 상상도 적당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하게 하는 편에 속하는 사람이지만 의식해서라도 현실과 상상의 비중을 맞추려고 노력 중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상상을 잘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