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은 칭찬

동생과 나

by grassrain


아빠가 나를 칭찬한 적이 있었다. 어렸지만 아빠 입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가 나오는 게 낯설었고 마냥 좋진 않았다. 나에 대한 아빠의 자랑은 시간차를 두고 여러 자리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었다.

“아 글쎄, 내가 집사람이랑 정신없이 싸우고 있는데 큰 애가 지 동생 손을 붙잡고, 저만치 큰길까지 나가 있더라고. 껌껌한 늦은 밤 중에!! 날씨도 제법 추웠는데. 난 성질이 나서 언제 나갔는지도 몰랐지. 집사람이 뒤늦게 알아채고 같이 막 쫓아나가서 찾았지. 다시는 안 싸우겠다고 달래서 데리고 집에 들어왔었어.”

‘저런 걸 왜 사람들에게 말하는 거지? 어른들은 누구와 싸우는 게 안 부끄럽나?’ 기억도 잘 나지 않고 기억하기도 싫은 사건을 몇 번씩 들으며, 무슨 이야기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는 눈으로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아빠는 매번 활짝 웃으면서 이야기 꺼냈고, 부끄럽다는 듯이 말을 천천히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재차 확인하며 자랑스럽게 마무리 지었다.

“그때,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나? 안 했나? 저 큰 애, 쟤가 마냥 순둥하고 어린애라고만 생각했는데 지 동생까지 챙겨서 대문 밖을 나갔더라고!! 껄껄 껄껄”

아빠가 칭찬하는 포인트는 ‘동생을 챙겼다.‘ 그것이었다. 당연히 나만 혼자 나갈 순 없었을 거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아빠가 생각하는 대로 멋지고 기특한 게 아니었다. 동생을 챙기고자 하는 언니의 마음이 아니라. 방문을 열고 대문까지 지나가는 게 너무 무서워서, 화난 아빠 앞을 지나가는 게 너무 겁이 나서 어린 동생의 손에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명확히 모든 상황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그것만은 확실하다. 무조건 일단 밖으로 나가는 게 훨씬 나았으리라 생각했을 거다.



천둥번개처럼 크고, 갑작스러운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에 진동이 느껴질 만큼 큰 소리였다. 정확하진 않지만 뭐가 떨어지거나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나의 뒷목은 이미 경직되어 있다. 아까부터 상황은 계속된 것 같은데… 이제야 비로소 의식이 몸속 제자리로 들어와 합체되었다. 깨어났다. 그리고 알아챘다. 아마도 몸이 먼저 압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의식도 굳어간다. 피가 마른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바닥으로 피가 다 쏠려 누워있는 내 몸의 윗 면은 바스러질 것 같다. 분명 누워있지만 어지럽고 정신없어 혼란스럽다.

그날은 3.1절을 앞둔 새벽이었다. 아니 새벽이 아직 안 온 밤 중이었을까. 봄방학 전에 학교에서 3.1절에 대해 배웠다. 눈을 떠도 눈을 감은 것보다 더 깜깜했다. 온몸은 딱딱한 나무통 같았지만 맞잡은 나의 기다란 손가락은 얇은 나뭇가지처럼 떨리고 있다. 어디선가 딱따구리 소리도 난다. 내 위아래 어금니가 부딪히며 소리 내고 있다. 사람의 몸이 참 신기하다. 춥지 않은 방 안의 이불 속이지만 꽁꽁 언 것처럼 굳은 몸도 신기하고, 발작에 가까운 떨림은 절대 멈출 수 없다.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다. 정말 규칙적으로,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딱딱 딱딱. 쿵. 딱딱딱딱. 쾅. 딱딱딱딱. 퍽. 딱딱딱딱. 팍. 딱딱딱딱. 푹.

“아악. 하지 마!!”

“어딜 도망가! 내가 그러지 말라했지!”

딱딱딱딱. 쿵. 딱딱딱딱. 쾅. 딱딱딱딱. 퍽. 딱딱딱딱. 팍. 딱딱딱딱. 푹.

듣기 싫은 소리들을 멈추고 싶다. 나도 나를 통제할 수 없다. 이 지경이 된 근본적인 원인. 저 바깥에서 나는 소리 또한 멈출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숨 죽여 울기다. 그리고 성당에서 배운 기도를 한다. 떨리는 손에 정성을 넣어 성호를 긋고, 기도한다.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비록 마음 속이지만 크고 또박또박하게 기도한다. 연약한 우리를 도와줄, 힘세고 위대한, 누군가를 부르고 또 부른다.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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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게 치유 당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이는게 아주 많~이 부끄럽지만 그 누군가에게 나의 글이 작은 토닥임으로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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