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방영에 재조명된 영화 '초능력자'
영화 ‘초능력자’가 EBS 한국영화특선으로 방영됐다. 한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이 작품은 방송 이후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다시 언급되기 시작했고, 몇몇 장면이 짧게 편집돼 영상으로 퍼지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낯설고 충격적인 설정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사람들에겐 다시 꺼내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 영화는 2010년 개봉작으로, 김민석 감독이 연출했다. 당시 총제작비 49억 원이 투입됐고 손익분기점은 약 170만 명이었다. 최종 관객 수는 216만 4805명을 기록하며 상업적으로도 흥행에 성공했다. 출연진으로는 강동원, 고수, 정은채가 주연을 맡았고, 윤다경, 최덕문, 에네스 카야 등이 출연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한 전당포다. 외부와 단절된 듯한 공간에 낯선 남자가 들어서고, 그를 마주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춰버린다. 말도 없고 지시도 없다. 단지 눈빛만으로 상대의 의지를 꺾는 이 인물은 ‘초인’이라 불린다. 누구에게나 이 능력이 통하지만, 유일하게 반응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고수가 연기한 규남이다.
초인의 조종이 통하지 않는 순간, 그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균열이 생긴다. 계획된 범행은 틀어지고, 규남은 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초인은 결국 사람을 죽이고, 모든 상황이 CCTV에 남는다. 이때부터 그는 규남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뒤를 쫓는다. 반대로 규남은 초인의 존재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영화는 단순한 추격이 아닌 대결 구도로 전환된다.
규남은 중졸 학력에 폐차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실직한 인물이다. 전당포에 새로 취직하게 된 날, 초인을 처음 마주하게 된다. 처음엔 혼란에 빠진 피해자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신체는 달라진다. 총격을 입고도 일어나고, 열차에 치이고 건물에서 떨어져도 살아남는다. 초인의 조종을 견디는 것을 넘어서, 물리적 충격에도 버텨내는 몸으로 변화한다. 이 변화는 직접 설명되지 않지만, 장면을 통해 점진적으로 드러난다.
극 후반부로 갈수록 규남의 생존력은 눈에 띄게 강화되고, 초인은 능력을 무리하게 쓰면서 신체에 이상이 나타난다. 피를 토하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고, 시야가 흐려진다. 규남은 점점 초인의 위협에 흔들리지 않게 되고, 초인은 처음 겪는 불안과 공포를 맞닥뜨린다. 결국 초인은 규남의 주변 인물들까지 위협하게 되고, 극적인 충돌은 고층 건물 옥상에서 마지막을 맞는다.
옥상 위에서 초인은 “살고 싶었다”는 말을 남긴다. 규남은 그런 초인에게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그 한마디는 영화 내내 누구에게도 이름 한 번 불리지 못한 초인에게 처음으로 건네진 질문이다. 이후 둘은 함께 추락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초인의 능력은 멈췄고, 규남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버텼다.
이 영화에서 별도의 설명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규남의 변화도, 초인의 과거도 대사로 풀지 않고 장면으로 보여준다. 말보다는 행동, 설정보다는 상황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초능력을 다루면서도 판타지에 기대지 않고, 현실 세계와 충돌하게 만든 설정이 인상 깊다는 반응도 나왔다.
‘초능력자’는 개봉 당시에도 눈에 띄는 설정과 두 배우의 대결 구도로 화제가 됐다. 당시에는 장르적 시도가 낯설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세계관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이 다시 영화를 찾기 시작했다. 특히 EBS 방영 이후 짧은 영상들이 온라인에 퍼지며 다시 조명되면서, 10년 넘은 이 영화는 또 한 번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