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기자 생존기]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 1

시각장애인 김남술·김태연 씨 동행 취재기

by 송승원 기자

원주시 일산동의 한 아파트 단지. 선글라스를 낀 중년 남성이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좀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여성의 손을 잡고 천천히 나에게 다가온다.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흰 지팡이의 날(10월 15일)'을 맞아 어렵게 모신 시각장애인 김남술 씨와 활동 지원사 황구연 씨다. 함께 동네를 걸으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행 환경이 잘 마련돼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인사를 드리자 김남술 씨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하셨다. 놀라시지 않도록 손을 잡겠다고 말씀드리고 악수를 했다.


그 사이, 차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시각장애인 김태연 씨가 활동 지원사 이현지 씨의 도움을 받아 차에서 내린다. 김태연 씨는 한껏 멋을 내신 듯하다. 패션 감각을 칭찬하며 인사를 드리니 순박하게 웃으신다. 이현지 씨가 김태연 씨가 직접 고른 옷이라고 말을 거드셨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느린 발걸음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아파트 출입구를 벗어나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보행로 곳곳은 움푹 파여 있었고, 맨홀은 이음새가 파손돼 심하게 덜컹거렸다. 시각장애인에게 도로의 방향을 알려주는 점자블록은 마모돼 있거나, 맨홀에 가로막혀 있었다.


조금만 주의 깊게 인도를 보면 깨지고 패인 흔적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저희는 길을 걷다가 갑자기 파손된 구간을 지나면 발이 쑥 들어간단 말이에요. 접질리기도 하고, 삐기도 하고. 좀 불편한 게 많아요."


계단을 이용하다 보면, '한 칸 더 있겠거니'하고 발을 내디뎠는데 바닥일 때가 있다. 심장이 수직 낙하하는 것 같은 섬찟함을 느끼게 된다.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파손된 길을 만나는 건 그보다 더 깜짝 놀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섰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안내 벨은 없었다. 청신호가 들어오자 김태연 씨와 김남술 씨가 활동 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뒤를 따라 걷는데 신호가 이렇게 짧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적신호로 바뀌었지만, 김남술 씨는 보행로까지 세 발자국 정도를 남겨 놓고 있었고, 김태연 씨는 2/3 지점밖에 오지 못했다. 갑자기 큰 소음이 들렸다. 누군가 세차게 경적을 울린 것이었다.


"뭐해요! 신호 바뀌었잖아요. 안 가고 뭐 하는 거야!"


우회전하려는 오토바이 운전자가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성질을 냈다.


청신호로 바뀌자마자 출발했는데도 반대편까지 가려면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


"저기요. 도움이 필요하신 거 안 보이세요?"


취재팀이 항의하자 오토바이 운전자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쌩하고 지나갔다.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오토바이 운전자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은 김태연 씨가 걱정됐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런 말 들으면 속상하죠. 그런데 늘 있는 일이에요. 더 심한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많아요. 눈도 안 보이는 게 왜 저렇게 나와서 돌아다니냐고."


김태연 씨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 덤덤함에 마음이 더 아팠다. 활동 지원사 이현지 씨가 그런 김태연 씨에게 팔짱을 끼고 손을 꽉 잡아주셨다.


이어서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공공시설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잘 마련됐는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쉬운 게 너무 많았다.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인도에 점자블록은 없었다. 도서관 입구에는 주차금지 사슬이 처져 있어 위험해 보였다.


도서관 입구에 처진 사슬.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위험할 수 있는 시설물이다.


김남술 씨가 보조 없이 입구에서부터 화장실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김남술 씨는 한 손으로는 지팡이, 한 손으로는 벽을 짚어가며 천천히 움직였다. 반대 방향과 구석으로 가기를 몇 차례 반복한 뒤에야 화장실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짧은 거리를 가는데 대략 5분이 걸렸다. 안내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나마 빠른 편이에요. 역사나 이런 데는 특히 더하죠. 사람들한테 물어봐서 갈 때도 있는데 매번 그러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원주시 복지 담당 부서를 찾았다. 이런 불편 사항이 있는데 인지하고 있었느냐고 묻자 도로에 관한 내용이라며 도로 담당 부서에 질의해야 한다고 답했다. 도로 담당 부서는 모든 도로 보수 수요를 파악할 수 없는 노릇이라며 복지 담당 부서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부서 간의 책임 공방이 이어지는 한, 김태연 씨와 김남술 씨를 넘어지게 만드는 움푹 파인 길은 절대 채워질 수 없다. 한 부서가 주도하든, 공고한 부서 간 협업체계를 구축해 대응하든 대책이 필요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을 떠올렸다. 태어날 환경을 알 수 없는 상태(무지의 베일)에서 사회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불우한 환경에서 장애인으로 태어나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대와 처우 개선을 위한 협의가 너무도 부족해 보인다. 짧은 시간 최선을 다해 횡단보도를 걸어가는 시각장애인에게 경적을 울리고,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위한 도로 보수마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면 그저 '무지'하기만 한 건 아닌지 씁쓸한 생각이 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dWu2x1YnLtw